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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Sep 13. 2023

걱정, 불평이란 이름의 사치

걱정부자가 받은 강력처방

아기가 갓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기는 한 발씩 떼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을 재밌어했고, 어색하던 신발의 무게에 적응하고 나니 집보다 훨씬 넓고 마구 돌아다니기 좋은 밖에 나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렇게 아기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돌아다니면 마주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눈인사와 손인사를 건네는 아기와 함께하는 것이 어쩐지 지쳐서 한 번은 밖에 잠시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데리고 다니는 거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 내 I 성향에 너무 맞지 않아." 그리고 이 말은 후에 내가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말이 되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꼬박 열흘 동안 고열에 시달렸다. 열이 열흘 동안 지속된다는 의미는 단순히 아기가 아프다, 의 의미로 그치지 않는다. 아기들은 열에 취약한 존재들이어서 체온 체크를 시간마다 해주고, 때마다 두 종류의 해열제를 교차복용해서 먹이고, 병원에 적어도 2-3일에 한 번씩은 데려가고, 아기를 돌보는 공동양육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무엇보다 새벽에도 1-2시간에 한 번씩은 깨서 아기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흘 정도 반복하면 그 모든 것의 선봉장에 서있던 엄마인 나까지 지치게 만들기 충분하달까.


아기는 생각보다 씩씩하게 견뎌냈다. 먹는 양도 크게 줄지 않고 잘 놀고, 그러다가 조금씩 지쳐가는지 누워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더니 일주일 즈음 되니 거의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원래는 자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눕는 것을 극혐 하던 아기였는데 그런 애가 하루종일 누워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쌓여갔다.


병원은 이틀이 멀다 하고 갔다. 퇴근 후 부지런히 병원을 다니며 진찰을 받고 약을 타오고, 종합적인 검사를 권유받아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겨서 가고. 하지만, 열을 제외한 증상들은 점차 나아가면서 없어졌고 결국 입원을 시켜야겠다고 다짐한 날 저녁에 잠시 바깥바람을 쐬게 한다고 데리고 나갔을 때 조금 걷다가 넘어지는 것을 두 번 반복하고는 더 걷지 않겠다며 울면서 안기던 것은 조금 이상했지만 힘이 없어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입원의 이유였던 열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 떨어졌고 그렇게 이틀간을 별다른 치료 없이 있다가 퇴원을 권유받아 고민하고 있던 찰나, 난 이때를 아직도 종종 생각한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던 중이었고 아기 옆을 지키던 아버님의 전화를 받았다. 퇴원은 너무 이르지 않나 하고 망설이니까 옆에 계신 의사 선생님을 바꿔주셨는데 그때 이것을 물었었다. "아기가 이렇게까지 아픈 게 처음이어서요. 혹시 저렇게 안 걷는 건 언제까지 갈까요? 계속 누워있으려고만 하는데." 나의 이 말에 일주일 이상 계속되면 그땐 다른 질환을 감별하기 위해 검사들을 더 받아봐야 할 수도 있다고 답하셨고 나는 고민하고 말씀드리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고 잠시 고민하다가 가까운 지인에게 상황을 털어놓은 후 건네받은 조언에 따라 서둘러 검사를 진행해 달라고 병원 측에 부탁드려서 아기는 이것저것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날 밤, 뇌 MRI 검사를 끝으로 금식이 풀리면서 와구와구 밥을 먹고 곧이어 지쳐 쓰러져 자는 아기옆에서 나는 끅끅거리며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올랐던 장면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이렇게 누워만 지내기 시작한 전날 저녁에 신나서 집을 뛰어다니던 아기의 모습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앞서 말했던 산책 후 힘들다고 남편에게 토로하던 장면이었다.


아기가 걷지 못하게 되자,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기를 두고 하는 수많은 걱정과, 간혹 불평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를. 그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당연하다 생각되는 '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임을. 그리고 울면서 자연스레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을 아기가 잘 겪어내고 다시 건강을 되찾는다면, 그때는 내가 '부캐'를 만들어서라도 아기의 옆을 즐겁게 지키겠다고.


자연스럽게 발달하면서 습득하게 된 운동 능력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재활치료는 치료를 받는 아기도 지켜보는 우리도 참 쉽지 않았다. 돌 지난 아기에게 견딜 수 있다고 파이팅을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힘들다고 그대로 주저앉고 싶어 하는 것을,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내미는 손을 애써 모른 척하고 부디 치료가 효과가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던 아가는 어느 정도의 회복을 확인한 후 퇴원하여 집에 올 수 있었다. 


이 모든 시간은 길지 않았다. 2주가 조금 되지 않는 시간, 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고 회복하기엔 나에게도 가족 모두에게도 너무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요즘 나는 여러 번 온갖 걱정이 밀려들 때마다 숨을 고르곤 되새긴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정말 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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