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부초밥 Sep 27. 2023

너는 한번 더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든다.

아이가 운다. 조막만 한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내 심장을 뒤튼다. 아마도 그 애의 주먹보다도 훨씬 클 내 심장이 빨래처럼 쥐어짜진다.


상상 속에서 나는 맥주 캔을 딴다. 어두운 곳에 가두어져 있던 거품이 내가 사는 이 집의 공기와 만나서 치익, 자유의 환호성을 지른다. 이게 내가 상상 속에서 맥주 캔을 딴 첫 번째 이유다. 그 속의 탄산처럼 내 가슴을 옥죄는 답답한 무언가도 치익, 날아가길 원한다.


아이의 목젖이 내 목을 조른다. 여태 자고 일어났으니 배가 고픈 걸까. 오늘도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는 대신 냉장고로 달려가는 걸 택한다. 무슨 문제일까. 뭐를 해주면 해결이 될까. 아이의 울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나는 또 무너지고 말 거야.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것이 될 거야. 아이 것보다 더 큰 울음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게 될 거야. 그러면 나도, 아이도, 누구도 위로받지 못하고 상처 입은 두 사람이 될 거야. 내가 두렵다. 나를 위해서, 아이의 울음을 그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우울한 엄마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야 했다.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달려와 아이는 보란 듯이 밥그릇을 엎는다. 보드라운 카펫에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고기완자 한 덩어리가 못된 표정으로 떨어진다. 내 심장도 함께 내동댕이쳐진다.


나는 숨을 고른다. 밥그릇처럼 굴러 떨어진 내 인내심을 얼른 주워 담아 빗장을 걸어본다. 이 순간 내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온다면 그건 저 아이보다 더 큰 울음소리이거나, 야단치는 소리일 것이다. 둘 다 해본 적이 있지만, 둘 중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화가 나지만 참아야 했다.


여기 아이가 울고 있는데 화가 나는 엄마가 있다. 좋은 엄마라면 달려가 안아주겠지. 그러나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열 번 중에 두 번 아이를 안아 달랜다. 두 번은 더 큰 울음소리를 낸다. 두 번은 분에 못 이겨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아이를 훈계한다. 나머지 네 번은 그저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의식의 저편으로 밀어내면서.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내 의식을 방해할 무언가를 애타게 찾으면서.


나는 회피하는 엄마다. 심장이 뜯기는 고통을 느끼면서 회피하는 엄마다. 아이가 쏟아내는 울음이, 그 감정이 내게로 와 증폭되는 과정을 오롯이 느끼면서 여전히 회피하는 엄마다. 그 순간 내가 가진 인내심을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노력으로 몽땅 끌어다 쓰면서, 아이를 향해 두 팔 벌리지 않는 엄마다.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아도 결국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애당초 해결할 수 없는 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고 일어나 보니 놀이시간이 사라진 게 아쉬워서 그렇게 울었는지도 모른다.


이 때다. 내 안으로 끌어 모은 인내심을 밖으로 향할 때가 왔다. 인내심의 둑을 개방해 아이에게 묻는다. “어디가 아파?” 이 질문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다시 울음을 이어간다면, 이미 흘러가버린 인내심을 다잡을 기회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응.”

“어디가?”

“요기.” 아이는 제 손가락을 이리저리 굴려보다 적당한 한 곳을 가리킨다. 엄살 단골 엄지 손가락이다.

“거기가 아팠어?”

“응.”

“엄마한테 와서 여기 아팠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응.”

“엄마한테 와서 여기 아파요, 밴드 붙여 주세요, 말할 수 있어?”

“응.”


아이는 금세 회복되었다. 그렇게 울더니 뒤끝도 없다. 나는 더는 말을 잇지 않는다. 내 마음이 난 자리를 뿌리째 뽑더니 혼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는가 보다. 내게 오더니 허벅지를 두어 번 쓰다듬는다. “미안해 미안해”


나보다 마음이 넓은 아이가 나에게 사과한다. 너는 한번 더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든다.


이번엔 진짜로 맥주캔을 딴다. 치익, 소리는 명쾌하지만 생각만큼 응어리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술기운이 올라 정신이 몽롱해지면 썩은 심장의 아픔도 흐릿해질지 몰라 계속해서 술을 홀짝인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