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Virginia, there is a Santa Claus.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것보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게 더 힘든 일이었다.
나에게는 그랬다.
나는 꽤 오랫동안 산타가 있다고 믿었다. 멍청할 정도로 순진했다. 어쩌면 산타가 아무 조건 없이(물론 울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때로는 여기에 살이 붙어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좀 울고 떼쓰더라도 대게는 선물을 받았으니까) 내게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개념이 내게 너무나도 소중해서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내게 오빠는 말했다.
"산타는 엄마랑 아버지잖아."
"근데 나는 산타를 봤는데?"
"언제?"
"예전에 유치원 다닐 때 산타할아버지가 나한테 제일 큰 선물을 줬단 말이야."
"그건 산타 옷을 입은 사람이지."
산타 옷을 입은 사람인데 산타가 아니라는 말을 난 믿기 힘들었다.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에는 산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차고 넘쳤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그와는 반대되는 증거가 차고 넘쳤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아이를 낳았고,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내가 산타를 본 건 6살 때였다.
산타는 내게 "보글보글 소리가 나는 주방놀이"세트를 선물해 줬다.
유치원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모여 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커다란 빨간 주머니를 들고 오셨다.
산타 할아버지가 차례차례 선물을 꺼내 선물에 적힌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 친구들은 선물을 받고 입이 찢어지게 웃으면서 자리로 돌아왔다.
내 차례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내 선물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내 "보글보글 소리가 나는 주방놀이"가 산타 할아버지의 커다란 주머니의 밑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 친구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느껴졌다.
내 "보글보글 소리가 나는 주방놀이"는 나보다 컸다.
요즘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주방놀이와 비교할만한 퀄리티는 아니겠지만, 그때 내가 그 선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 보글보글 소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리고 내가 받은 선물이 반 친구들 중에서 제일 컸다는 사실을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아직도 기억한다.
산타클로스를 직접 만날 거라며 밤늦게까지 졸린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려던 적도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오빠와 나를 열심히 타이르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난다.
다시 한번 당연한 얘기지만 그 해 산타는 결국 내가 잠든 뒤에 다녀갔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잠들기 전에 산타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달라고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맞잡고 소원을 빌었다. 엄마는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연필깎이가 갖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다고 했다.
엄마는 오빠의 소원도 궁금해했다. 그맘때쯤 오빠는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챘던 건지 엄마에게 자기가 빈 소원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내게 오빠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오빠는 미니카를 갖고 싶다고 말했고, 엄마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 해 정말 많이 울고, 떼도 많이 썼지만 그래도 산타에게 선물을 받았다.
오빠는 미니카를 받았다. (오빠 미안한데 내 덕분이었어.)
물론 나도 연필깎이를 받았다.
그런데 오빠에게는 선물이 두 개였다. 오빠는 미니카뿐만 아니라, '4학년 전 과목 문제풀이집'을 선물(?)로 받았다.
오빠는 원하지 않은 선물이 딸려온 것에 대해 분개했다.
그 해 산타할아버지는 스윗하게도 편지를 남겨주셨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색으로 타이핑된 짧은 편지였다.
그 해가 우리 집에 산타가 다녀간 마지막 해였다.
"그럼 그거는? 나는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도 받았는데?"
"그건 엄마랑 아버지가 써 준거지. 그리고 야, 나는 문제집 받았잖아. 누가 나한테 문제집 사주겠냐?"
"그건 칼라 프린터로 뽑은 거였어. 우리 집엔 칼라 프린터기가 없잖아." (당시 우리 집에는 흑백으로만 출력 가능한 프린터가 있었다.)
"아버지 병원에 칼라 프린터기 있어."
나는 그 뒤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 연필 깎기와 미니카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는 엄마와 아버지 손을 잡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하나씩 골라 사 왔던 기억이 생생했던 것이다.
왜 엄마와 아버지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는 것인가.
누가 됐건 선물을 준다는 사실이 기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실들이 한데 모여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내 믿음 속에서도 산타는 서서히 없어졌다.
"옛날에 크리스마스 때 유치원에서 산타클로스가 선물 주는 행사가 있어서 엄마가 선물을 보낸 적이 있어."
"어? 그거 나 엄청 큰 선물 받은 거? 나 엄청 행복했는데, 그때~"
"그때 아니고, 오빠 유치원에서."
"아 그래?"
"그때 오빠랑 오빠 친구들이 다들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는데, 따라간 네 선물은 없는 거야. 네가 3살인가 4살인가 그랬는데, 행사는 다 끝나고 산타할아버지 주머니는 비었는데, 네가 빈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면서 니 선물은 없는지 찾더라. 엄마가 그때 네 선물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아ㅋㅋㅋ 그랬어? 그래도 괜찮아. 나 유치원 때 엄청 큰 선물 받아서 행복했으니까."
이제 내게 산타클로스는 없지만, 나에게는 산타가 남기고 간 추억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나는 다시 아이처럼 설렌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이번 설렘은 조금 다르다. 내 아이에게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기쁨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아이에게 묻는다.
"있잖아~ 산타할아버지가 엄마 아빠 말 잘 듣는 아이한테 선물 주는데, 쑤기는 갖고 싶은 선물 있어? 선물 뭐 갖고 싶어?"
할 줄 아는 말 중에 가장 멋진 형용사를 넣어서 아이는 대답한다.
"멋진!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