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나의 이야기 5화
내가 4살부터 13살까지
약 9년간 살던 우리 집은 25평짜리 아늑한 공간에서 살았다.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때를 돌이켜보면 그 상계동 인근의 그 25평 아파트에 살 때였다.
그곳에서 우리 집은 행복했다.
엄마아빠도 행복했고 나도 그 공간에서의 그 내음이 잊히지 않는다. 그곳에서 가족들이 춤추던 모습, 아빠의 퇴근길에 아빠한테 달려가 안겼던 기억
아빠가 군청색 점퍼 안쪽 주머니에 월급봉투를 들고 오시는 날에는 엄마가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주곤 했다.
페리카나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
9900원짜리 피자
그거면 우리가족은 더할나위 없었다.
그 당시 아빠는 이불공장에서 일했다.
이불을 누비는 개수에 따라 돈을 받았다.
아빠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한 장이라도 더 누비기 위해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서 그랬다.
이불을 누비는 아빠의 어깨에는 엄마와 나와 오빠 이렇게 셋이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는 지금도 어깨가 안 좋다.
사실 아빠는 고아였다.
중학교 입학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막내였던 아빠를 누구 하나 돌봐주지 않았다.
아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아빠는 고아라 중학교밖에 진학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하자
중학교3학년 담임선생님이 나의 큰아버지를 찾아왔다.
“ 야는 꼭 공부시켜야 혀요. 공부 쫌만 허면 뭐든 할 수 있는 아에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할아버지 재산을 모두 가져갔지만 아빠를 진학시킬 돈이 없었다.
큰아빠는 아들 가르칠 돈은 있었지만 동생을 고등학교 보낼 돈은 없었다.
아빠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했다.
일을 해서 돈을 받으면 모두 큰엄마에게 줬다.
큰엄마는 돈을 모아서 아빠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큰엄마는 아빠돈을 탐냈다.
아빠를 돌봐주는 어른이 없었다.
아빠는 신발이 다 닳아 욕실 실내화를 신고 다녔다.
너무 추운 겨울이었다.
맨발에 욕실실내화를 신고 일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일은 쉬는 날.
오늘 받은 품삯으로 내일 읍내에 나가 운동화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아빠는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으며 읍내에 걸어가기 전에 부디 발가락이 동상에 걸리지 않았으면 했다.
어떻게 알고 큰엄마가 아빠를 쫓아왔다. 아빠가 신발 사러 가는 것을 알고 그 돈을 탐냈다.
아빠는 겨울에 욕실실내화를 신고 추운 겨울 발이 얼고 있었다. 그래도 큰엄마는 그 돈이 탐났다.
큰엄마를 뿌리치고 읍내에 걸어가며 아빠 눈엔 눈물이 고였다. 20살도 안된 어린아이였다.
큰아빠는 동네에서 제일 큰 방앗간을 했다.
아빠는 거기서도 일을 했다.
큰아빠는 큰아들이라고 할아버지 재산을 다 가지고 갔고 큰엄마는 아빠가 번돈을 모아주겠다고 가져갔다.
스무 살이 됐다. 아빠는 독립을 결심했다.
큰엄마는 아빠에게 줄 모아둔 돈이 없다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