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 1
태현은 형의 집을 떠나 드디어 독립하기로 마음먹었다. 큰형수는 태현에게 그동안 모아준다던 돈은 전부 다 집에서 먹고사는 값을 치고도 천 원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제길, 중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벌어다 준 돈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나이차이 얼마 나지 않는 조카들의 교육비로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캭 퉤 재수 없다.’ 태현은 세상이 나를 빗겨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태현은 중학교에서 진학을 멈춰야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학교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이 머리로 학교에 가지 않는 게 너무 아깝다고 형을 설득했지만 가족들은 냉담하다 못해 차가웠다.
‘아버지만 더 오래 사셨더라면…’
어느새 생채기만 남은 엽현의 마음엔 자꾸만 더 삐뚤어진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괜히 땅에 있는 돌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고서부터 몰래 돈을 모았다. 이천원을 보태 수중에 삼천원이 있었다. 한숨이 절로 쏟아지듯 나왔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에 한참을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숨을 내쉴때마다 하얀연기가 짙게 뿜어져 나왔다. 콧속이 허 하고 볼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다. 눈이 내려 온세상이 하얗게 뒤덥혀 있었다.
태현은 가게유리창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며 막막함에 괜히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괜찮다고 애써 감정을 이겨내 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고 노력할수록 답답한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 했다. 아버지만 오래 살아계셨더라도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나오진 않았을 텐데, 그동안 먹은 눈칫밥만 생각해도 부아가 치밀었다.
태현은 열두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 나이 마흔에 태현이 뱃속에 생겼기에 그리 반가운 아기가 아니였다. 복자는 태현을 떼어내 보려 간장을 먹고 몸을 이리저리 구르며 애써보았지만, 태현은 질기게도 살아남아 세상에 나왔다. 태현이 태어났을때는 이미 형들은 장성한 상태였다. 복자도 열둘씩이나 낳아 기르며 공사가 다망해서 였는지 막내에게 큰사랑을 쏟지는 않았다. 다만 아버지 영식은 본인을 꼭 닮은 태현을 다른 어떤 자식보다 예뻐했다. 태현의 기억 속에 유일하게 사랑을 준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만 살아계셨어도..’ 중학교 2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부터 태현의 입에서는 같은 말이 버릇 처럼 튀어나왔다. ‘아버지만 살아계셨더라면…’
언젠가부터 태현은 일하던 가발공장에서 몰래 취식을 했다. 얼마나 싸늘한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내일아침에 눈을 뜰 수 있길 기도했다. 입이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염원했다. 매일밤 공장장에게 들켜 내일부터는 이곳에서 잠들지 못할까 겁을내며 뜬눈으로 잠을 청했다. 바닥은 얼마나 차갑고 또 얼마나 살랑한지 공중에 잠깐 떠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