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잘 가 내 사랑, 루이
해외연수를 오면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믿었고, 그렇게 될 거라 자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내 마음은 그러지 못하였다. 내가 만든 터널에 스스로 갇힌 느낌이 들 때면 어김없이 음식을 마구잡이로 집어넣었고, 벗어나려 노력할수록 더 깊은 늪에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이렇게 된 거 마음 최대한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이자며 지내던 어느 가을, 막둥이 루이의 사고소식을 들었다. 루이는 12년 전 언니가 데려온 작고 소중한 막둥이, 초코색의 사랑스러운 장모치와와였다.
단순한 강아지가 아닌 나에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애기 때부터 봐온 루이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힘이 되어줬다. 무엇보다 엄마의 투병소식을 듣고는 더욱더 루이를 입양 보낼 수가 없었다. 강아지를 보내자는 엄마의 말에도 너무나도 죄송스럽지만 또 다른 가족을 잃는 것 같아 차마 그럴 수 없었고 고집스럽게 지켜낸 아이 었기에 루이의 의미는 남달랐다.
언니의 출산으로 지인에게 맡겨진 루이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눈을 잃었다. 사고도 아닌 누군가에 의해 눈이 손상된 것 같다는 수의사의 소견을 전해 들었고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범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밉고,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아니 그때 보내줬더라면 소중한 그 아이가 다치지 않았을까.. 해외연수를 택한 것은 나인데 그로 인해 얻은 게 무엇일까 스스로를 탓하고 자책했다.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서였을까.
힘든 와중에도 루이를 간호하는 언니를 보며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살아줘서 그리고 버텨줘서 고맙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국에 곧 가면 내가 지켜줄 거라고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루이는 긴 여행을 떠났다. 급하게 병원을 간다던 언니의 카톡을 보고 불안감이 몰려왔고 설마는 역시나 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 전까지 아픈 몸으로도 언니를 밝게 맞이해 주던 영상 속의 루이는 사진 속에 예쁜 모습만 남아있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며 세상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왜 내 소중한 것들은 항상 먼저 사라지는 건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보다 더 최악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 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생과 사는 사람의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엄마와 할머니를 연달아 잃고 악착같이 버틴 5년을 그걸 버티게 준 소중한 존재가 사라졌다는 건 어떠한 희망도 사라진 듯했다.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하고 퇴근 후엔 절망감에 쌓여 울기를 반복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누구나 언제나 이별을 하게 될 거란 걸 알지만 내 몸과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를 잃고도 1년간의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일, 공부에만 빠져 살았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오직 출근과 공부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폭식의 늪은 나를 갉아먹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쯤 이 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또 오긴 올까 스스로 반문하길 수 만 번.
그저 긴 여행을 먼저 떠난 루이에게, 잠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되뇔 뿐이다.
외로웠을 그 먼 길을 엄마가 마중 나와주지 않았을까, 작별인사라도 할 수 있게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저 마지막으로 안아주고 싶을 뿐이다.
내 사랑 루이야,
내가 가장 사랑한 엄마와 다시 만났을까..?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긴 여행을 시작했을까?
바보같이.. 마지막 통화 속의 너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내 목소리를 알아봐주더라,
바보같이.. 넌 그렇게 또 사랑을 주더라. 그래서 그 모습이 평생 잊혀지지가 않을 거 같아.
가장 좋았던 순간도 최악이라 생각했던 순간도 나에게 사랑만을 주었어.
너와 함께한 12년이 이렇게 멈춰서 너무나도 억울하고 안타깝고 이로 말할 수가 없어.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뿐이야.
내가 너의 곁에 있었더라면 조금은 다른 결말이지 않았을까 싶더라.
12년을 가족으로 때론 친구이자 동생으로 있어준 너에게 진심으로 고마워.
너는 나에게 행복과 사랑만을 주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 거 같아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야.
나와 가족이 되어서 잠시라도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갔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거 같아.
그 어떠한 말로도 감정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이 글이 너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너로 인해 내가 행복했듯이, 네가 더 행복해주라.
잘 가, 내 사랑 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