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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Nov 27. 2022

여행을 준비하다 (3)

여행의 결실

  그러한 생각으로 여행을 가기 전엔 계획을 열심히 세우고, 사전 조사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떠났던 여행인데, 다녀와서는 남은 것이 사진밖에 없는  같았다. 사진이 전부라고는 하지만 정말로 사진만 남은 여행이  것이 어떤 면에서는 아쉬웠다.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떠오르긴 하지만,  생각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고민과 시간과 정성, 다시는  무엇과도 맞바꿀  없는 소중한 경험으로 가득한 여행인데, 단지 사진만 남은 여행으로만 남기기는  아무래도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수기로 작성해놓지도 못했고, 사진 정리를 하지도 못했기에 나의 해외 배낭여행은   마음속에서 미완성이었다. 여행 일정을 모두 무사히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마무리를 짓지 못한  같은 느낌이었다.


  왜 다녀오자마자 여행기를 남기지 않았느냐에 대한 변을 하자면,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다녀온 지 11년 동안 바빴다. 물리적으로 정말 많이 바빴다기보다는 마음이 바빴다고 해야 할 것이지만. 다녀오자마자 개강을 하고, 수업을 듣고, 취업을 위한 자격증 준비, 대외활동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진로 고민도 치열하게 했다. 끊임없는 진로 고민과 취업준비 끝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대학원에 가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졸업하고, 그러다가 공부를 몇 년 더 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늘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꼭 여행기를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그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10여 년 전 내가 떠나고 싶은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그때 느꼈던 것들과 지금 느끼는 것들을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 이야기라 여행 정보책의 역할은 할 수 없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글과 사진 모음집 정도이기만 해도 좋다.


  대학생 때, 여행작가협회였던가. 협회를 통해서 여행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과 여행 작가들이 모여서 함께 당일치기 일정으로 정선 여행을 가본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여행 작가를 본업으로 삼지 말라던 여행 작가님이 떠오른다. 세상에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많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책을 써도 잘 안 팔리는 게 여행 에세이 책이고, 또 여행 에세이를 쓰려면 여행을 다녀야 하니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만큼의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행책을 쓰려거든 다른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면서 써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여행 작가를 본업으로 삼으려고 했던 적은 없지만, 그 말을 듣고 더욱이 ‘여행을 주제로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과 당시에 썼던 일기를 엮어서 책을 쓴다는 상상을 그만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주춤했던 11년 동안, 여행 에세이를 찾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있었고, 독립출판이 활성화되면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써냈다. 그래서 나도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어 내 책을 만들어볼까 한다.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이 책이 어떤 감명을 줄 수 있다면, 10년 묵은 나의 경험은 그 쓰임을 다 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다니며 모아왔던 지도와 엽서들, 각종 티켓, 버리지 않고 모아둔 영수증 등. 그 모든 자료가 사료(使料)가 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어느새 낡아 버렸지만, 사진은 여전히 또 보아도 아름답고 설렌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20대 초반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하염없이 걱정하고 또 걱정하던, 마음이 작았던 나. 그럼에도 이겨내 보려 발버둥 치고 나아가려 했던 작은 20대 초반의 나. 그런 회상과 함께 그렇게 작았던 내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또 어떤 모습으로 회상할까? 그런 생각에도 답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와서 원하던 것을 얻었느냐고?


  다녀온 당장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1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배낭여행을 가기 전의 나는 소심한 편이었다. 발표하다가 날 선 질문에 대응을 잘하지 못해 울먹인 적도 있고,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못 할 것 같은 일에는 쉽게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못할 것 같은 일이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누군가가 나서기 전에 내가 나서는 일도 전보다 많아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도,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하게 해결해 나가는 여유를 어느 정도 갖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스트레스의 압박으로부터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자유로운 편이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자체가 배낭여행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무거운 짐을 스스로 이고 지고, 모든 상황을 스스로 컨트롤 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제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깨닫고, 텐트에서 자다가 얼어 죽을 것 같아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몸을 녹여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새롭게 계획을 짰던 것, 모르는 사람들과도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것,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꾸준히 했던 것. 그 모든 경험이 자양분이 되고 그 위에 또 다른 경험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내 모습을 11년 동안 쌓아 올렸던 것 같다. 나의 지금의 모습에도 부족한 면은 많고 더 나아가야 하겠지만, 그때와 비교했을 때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여행에서의 어떤 경험들이 나를 성장하게 준 것인지 기억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되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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