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파 Sep 19. 2022

게으름에 대하여

조종사 아빠란 게으를 수 있는가?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나가고

바로 부대로 출근하여 아침운동을 한다.

아침에는 몸이 덜 깨어있어서 몸의 움직임이 둔하고 귀찮지만 그래도 운동을 한다.

운동하면서, 쉬는 타임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기가 아까워 비행 비상절차를 되새기며 하나하나씩 머릿속으로 곱씹어본다.

이상하게 운동할 때 비상절차가 잘 외워지고 입으로 술술 나오게 된다. 시간을 아껴 나름 공부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그렇게 운동 후 샤워하는 그 순간은 꿀맛 같은 시간이다.


샤워 후 조종복을 입고 본연의 임무를 시작한다.

부여받은 비행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침 브리핑 참석하여 비행임무 보고 및 위험예지훈련 그리고 비행하기 전 항공기 점검, 그리고 비행 전 최종 기상파악 및 노탐 확인, 마지막으로 함께 비행할 크루들과의 미팅, 기관사 승무원의 컨디션은 어떤지 건강은 괜찮은지 간단하게 비행계획을 설명해주면서 나는 그들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핀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력에 따라 비행안전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조종석에 들어가기 전까지 혹시나 항공기 커버가

열려있는 것은 없는지, latch가 잘 되어있는지  항공기 주변을 둘러보며 마지막 점검을 실시한다.

조종석에 들어가 주임무 조종사와 함께 체크리스트를 보고 항공기 시동 및 절차에 따라 이륙 전 점검까지 실시하고 비행을 시작한다.

사실, 조종사가 되기 전에는 비행을 하면 주변 풍경도 보고 참 좋겠다 싶지만, 막상 조종석에서 조종간을 잡고 비행을 하면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보다는 관제사가 말하는 지시를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고, 혹여나 항공기에 결함이 발생할까 봐 비상절차를 리마인드 하며, 항공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주변 항적을 찾기 바쁘다.

그야말로 정말 정신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도 조종사는 뒤에 함께 타고 있는 기관사와 승무원들에게는 긴장한 티를 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조종사를 믿고 조종사에게 생명을 맡기면서 함께 비행을 하기 때문이다.

기관사 및 승무원은 조종사의 또 다른 눈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긴장해버리면 뒤에 타고 있는 승무원과 기관사는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는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항공기 엔진을 셧다운 하면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에 피곤함이 더해진다.

사실 비행을 하면 헬기는 로터 회전에 의해 양력을 받아 뜨기 때문에 엄청난 진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자동차 운전을 5시간 이상 한 것보다 2시간 동안 비행을 한 것이 피로감이 더하다.

그래도 안전하게 비행을 마친 것에 감사하며 피곤하지만 비행 후 아쉬웠던 점을 사무실에 와서 적어보고, 함께 비행했던 조종사와 디브리핑을 하며 차후 비행에 대한 안전에 기여되도록 한다.

비행 이후에는 정말 피곤하고 귀찮지만, 나는 항상 비행 후 아쉬웠던 점이나 비행에 전반적인 내용을 글로 기록해두려고 한다. 매번 다 읽어보진 못하지만, 분명 누군가에는 도움이 될 것이고, 그 누군가는 언젠가 나와 함께 비행하는 순간이 와서 나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까지 마무리가 되면,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칼퇴를 한다. 비행 후 피곤하지만 또 조종사가 아닌 아빠라는 타이틀로 내가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 밀린 분리수거와 음쓰버리기 그리고 애들 밥 맥이고 씻기고 양치까지 마지막은 아내와 함께 재우기.

그렇게 아이들을 재우다가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잠들어버리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누군가는 잠깐 게을러져도 돼..라고 하지만,

군 조종사로서의 삶 가운데 정말 게을러도 되는 것일까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된다.

내가 게을러지는 순간, 조종사로서 나의 안전에 필연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게으름과 군 조종사의 삶은 상생할 수 없는 것이다.

뭐 어떤 직업이든 다 마찬가지겠지만은 나라와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군인의 숙명은 게으름과 멀어지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게으름과의 싸움에서 이겼음에 감사하다.


게으른 자는 원하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원하는 것을 풍족하게 얻는다

- 잠언 13장 4절 -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의 뒷모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