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수태도 다시 보자
10년 전,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에 생긴 뿌리파리를 제거하겠다면서 식충식물을 키웠었다. 당시 식충식물의 습도 유지를 위해 수태를 이용한다는 글을 보고 칠레수태로 멀칭했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멀칭 해둔 수태가 점점 초록색으로 변하더니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신기한 마음에 건조 수태가 빛을 받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인터넷을 뒤져가며 조사했지만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했다. 알고 보니 녹색으로 된 수태는 조직이 살아나서 자라난 게 아니라 조류에 의해 덮인 것이었다. 아쉬운 마음과 함께 건수태는 생수태로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5년 정도 시간이 흘러 해외 식물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건조 수태의 포자를 활용하여 다시 생수태로 키우는 방법에 대한 영상이 있는 것이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어떻게 키워야 건조 수태가 생수태로 살아날 수 있는지 보았다. 생각보다 방법은 간단했다. 건조 수태를 물에 풀어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통에 담아 밝은 곳에 두면 되는 것이다. 그 외에 필요한 것은 오직 수태 포자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며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었다.
호기롭게 시도한 첫 번째 수태 살리기는 바로 실패하였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면 사용한 수태가 완전 압축된 칠레 수태로 고온 살균 처리되어 포자가 살아있을 확률이 낮았고, 지속적으로 수분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이번에는 뉴질랜드의 수태를 구입하여 밀폐된 통에 담아 다시 시도했다. 그리고 두 번째 수태 살리기도 실패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과정 중에 무관심으로 말라 다시 건수태로 돌아간 것이다. 인내심이 없던 나는 건수태를 생수태로 살리는 것은 상황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지었다.
시간이 또 흘러 코로나 팬데믹으로 열대 관엽식물의 인기가 급부상했던 시기가 있다. 나도 유행에 맞춰 새로운 관엽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중 하나가 알로카시아였다. 알로카시아는 귀여운 외모와 다르게 생각보다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이다. 이 식물을 잘 키우고 싶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흙에서 키우기, 반수경 재배, 마지막으로 수태로만 키우기. 아무 생각 없이 건수태로 알로카시아를 키우게 되었는데 여기서 나는 마주하게 되었다. 건수태에서 살아나는 귀여운 생수태의 싹을. 수태로만 키우기 위해 흙을 털고 알로카시아를 심어뒀는데 적정한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하얗게 올라오는 생수태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 수태를 살리려고 몇 번의 시도를 해도 어려웠는데 다른 식물들과 같이 키우니 이렇게 쉽게 살아날 수 있다니'하는 감탄과 함께 다시 생수태를 향한 열정이 생겼다. 식물과 같이 키워 수분이 과하지 않고 저정한 수분이 유지 되었?고, 유리병 안에 키워 빛이 통과되었으며, 무엇보다 살아있는 식물이 같이 있기에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 처음 살아난 생수태는 하얗고 매우 여린 모습이었으나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길고 진한 녹색으로 유리병을 가득 채울 만큼 복슬복슬하게 성장하였다. 한 번 성공하고 난 뒤의 시도는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건수태를 생수태로 살리기까지의 과정으로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건수태를 생수태로 살릴 수 있는지 알아보자.
(1) 신선하고 품질 좋은 수태를 선택한다.
국내에 수입되는 수태의 종류는 크게 천연 수태와 인공수태로 나뉜다. 인공수태는 합성 플라스틱 소재로 청록색으로 판매되는 것이 많다. 당연하게도 건수태를 살리려면 인공수태가 아닌 천연 수태를 선택해야 한다. 천연 수태로는 뉴질랜드산, 칠레산, 캐나다산, 중국산, 한국산이 있다. 이 중 국내에 수입이 가장 많이 되고 있는 수태는 뉴질랜드, 칠레산 수태이다. 이 두 종류 모두 생수태로 키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칠레산 수태는 고온 압축된 것이 많아 압축과정을 최소화로 한 뉴질랜드산 수태를 추천한다. 뉴질랜드 수태는 길이, 풀이나 잔 가지 유무 등의 선별 과정에 따라 7A, 5A, 4A, 3A, AA 등으로 분류된다. 등급이 높을수록 통통하고 풍성하나 AA(2A) 이상이면 괜찮다. 최근 수입된 수태일수록 녹색으로 살아있는 부분이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
녹색 부분만을 골라서 시도해도 좋으나 녹색 부분이 아닌 부분으로 키워도 차이는 없었다.
(2) 빛이 통과될 수 있는 용기를 준비한다.
유리, 플라스틱, 기타 빛이 통과할 수 있는 무색의 투명 용기를 준비한다. 수태는 공중 습도의 유지가 중요한 식물로 습도를 유지시켜줄 수 있는 뚜껑이 필요하다. 뚜껑은 완전 밀폐, 반 밀폐 상관없으나 밀폐는 습기로 빛 통과율이 떨어질 수 있으니 한 번씩 통풍을 시켜주면 좋다. 중요한 것은 수태가 마른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주는 것이다.
(3) 건수태를 정리하고 물에 담그고 용기에 담는다.
선정한 건수태의 압축을 풀고 산화제를 제거하기 위해 물에 헹군다. 몇 번 물에 헹군 다음에 물기를 제거하지 않고 준비한 용기에 차곡차곡 담아 넣는다. 이때 용기 바닥 부분에 자갈이나 화산석을 깔꺼나 다른 식물과 같이 식재해도 무방하다.
(4) 밝은 곳에 두고 수태 포자가 살아나길 소망하며 기다린다.
수태는 양지바른 장소를 좋아한다. 유리병에 빛이 통과할 수 있는 창가나 식물 led 아래에 둔다. 수분이 마르기 전에 분무기로 몇 번씩 뿌려주면서 지속적으로 관리해주면 된다. 물 뿌리기가 어렵다면 수태가 물에 잠겨져 있는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도 괜찮다. 배치가 되었다면 마지막으로 할 것은 기다림 뿐이다. 수태 포자가 자라기까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잠꾸러기 씨앗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내한다.
※ 수태 관리 및 주의사항 ※
수태에서 포자가 자라서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기 전까지 비료는 주지 않는다. 수돗물에 포함된 조류들이 비료를 먹고 녹색의 짙은 조류 자라 유리통을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태는 수돗물에 포함된 영양성분 만으로도 자랄 수 있다. 깨끗하고 뽀송한 수태를 원한다면 수돗물이면 충분하다. 나중에 수태가 엄지손톱 크기 정도로 자란 뒤에 성장을 위해 비료를 주는 것은 괜찮다.
수태는 양지 식물이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는 흰색으로 여려지고 웃자랄 수 있다. 짱짱하고 통통한 수태를 원한다면 밝은 곳에서 관리해주는 것이 좋다. 수태가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수분 보유 능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뚜껑을 오픈하여 키울 수 있다. 한 번 마른 수태는 다시 복귀되지 않으니 물을 충분히 주도록 한다. 수태는 늪지식물로 물에 담겨 있어도 무르지 않는다.
건수태로 생수태 키우기에 성공했거나 생수태를 구입했다면 다음 단계로 번식을 추천한다. 한 번 자란 수태의 번식은 어렵지 않다. 건수태를 물에 불려 똑같은 용기에 담고 물을 자박자박하게 부어 준다. 생수태를 0.5~1cm 정도의 크기로 잘라 올려 놓는다. 올려놓은 방향은 상단부의 생장점이 위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으나 크기가 작아 잘 보이지 않다면 그냥 올려놓으면 된다. 밀폐나 반밀폐로 습기를 유지하면서 건수태를 생수태로 키웠을 때와 동일하게 관리하면 된다.
수태는 늪지대에서 자라는 식물로 피트모스의 원료이다.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다량의 산소를 내뿜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이롭고 중요한 생물이다. 도시개발과 원예용으로 유통되는 과정으로 수태 생산지가 많이 훼손되고 있다. 자연에서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란 수태를 가정에서 따라 키우기는 어렵지만 지속 가능한 가드닝을 위해 한 번쯤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수태(sphagnum moss)
: 물이끼과에 속하는 연한 녹색의 선류 중의 하나이다. 색깔은 옅은 백색부터 연녹색, 붉은색까지 다양하다. 수태는 물을 다량으로 함유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80% 정도까지 흡수할 수 있다. 병원균을 억제하는 *tropolene(트로폴론)이라는 항균 작용이 있어 삽목이나 여린 유묘 재배에도 안전하다. 코케다마, 토피어리, 삽목, 취목, 발아용토, 식충식물 재배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전 세계적으로 자생하고 있는 식물이며 원예용 수태의 생산지는 뉴질랜드(바다수태), 칠레, 중국(야자수태), 태국(습지수태), 한국(산수태)/청수태, 캐나다 등이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수태들은 압축 건조된 상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사용 전 물에 세척하여 산화제를 제거하고 물을 먹여 사용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수태들은 살균 및 압축 건조의 과정을 거쳐 오기 때문에 하얀색에서 연베이지색을 띠고 있다. 가장 최상급의 품질을 자랑하는 수태를 뽑으라고 하면 뉴질랜드의 수태라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의 수태는 길이가 길고 통통하며 잔 가지들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뉴질랜드 수태 종류는 Sphagnum Cristatum, Sphagnum squarrosum, Sphagnum australe, Sphagnum falcatulum, Sphagnum subsecundum, Sphagnum subnitens(옅은 붉은색) 등이 있다.
*tropolene(트로폴론)
식물과 균류에서 분리되는 물질로 주로 식물의 심재, 잎, 껍질에 풍부하다. 에센셜 오일에 다양한 종류의 트로폴린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리페놀 산화효소(갈변 효소)와 버섯 티로시나아제를 억제하는 효과를 보인다.
* [네이버 지식백과] 물이끼 [sphagnum moss] (물백과사전) 참고
* https://blog.naver.com/seashorelee/30099053648 참고
* [위키백과] tropolene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