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건축가 Oct 16. 2024

재우형

재우형이 떠났다. 어제 새벽에.

작업실 선배였고, 고등학교 선배였던

참 꾸준하게 심심하고 재미없던 형이 가버렸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소장과 형을 추억하는데, 형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

오늘처럼 술을 그렇게나 많이 마셨는데, 형 자신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더 슬펐다.

쓸쓸하게 떠난 사람, 형 이따 봅시다.



재우형


김치를 송송 썰고

계란은 딱 한개

흑백이 있을리 있나

형의 볶음밥은 미슐랭 쓰리 스타

먹던 숟가락 쪽 빨아

냉동실에 넣으면

저온 살균, 기적의 파스퇴르


수 많았던 술의 밤

짬밥보다 맛 없던 형의 말

혼자 밥 먹듯 맛없는 밤을 보내다

그 새벽 누구보다 부지런히

세상을 떠난 이유가 뭐였을까


작업실 방구석이었으면

그 때 먹던 김치볶음밥이 있었으면

형은 서둘러

새벽에 떠나지 않았을까

파스퇴르, 내가 기억하는 형의

유일한 조크요

형의 박장대소를, 울분을, 경멸을

본 적이 없소


심심해서 떠났을까

힘들어서 떠났을까

얘기는 하고 떠나지 그랬소


매거진의 이전글 숲이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