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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행복한 집짓기의 여정 _ 봄에 시작한 집짓기

목조주택 집짓기,  과정의 기록

by 보통의 건축가 Mar 06. 2025

설계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보통의 경우 설계부터 시공까지 1년 안에 끝날 수 있는 집짓기가 늦어진 것은 토목이 정리되지 않아서다.

시공사는 목조건축 전문회사인 KSPNC를 선정했다. 설계가 끝나고 착공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시공사 선정에 공을 들였다. 내역을 꼼꼼히 검토하고 스펙도 조정해가면서 건축주의 예산 안에서 공사가 끝날 수 있도록 공사 금액을 조정했다.

시공 계약을 끝내고 착공을 앞둔 시점에서 작은 문제가 있었다. 이제 막 퇴직하신 사모님은 오랜 사회생활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한 달 남짓 여행을 떠나기로 하셨다. 문제라기보다는 축하할 일이었으나 조금은 염려되었다. 집에 관한 크고 작은 결정을 주도하셨던 분이셨으니까.

그분은 천하태평이셨다. 가장 신뢰하는 남편을 이곳에 남겨두고 가니 걱정이 없으셨다. 그런데 홀로 남으신 분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으로 집을 지어보는데, 아내의 부재가 큰 부담이었나 보다. 걱정하지 마시라, 제가 잘 챙기겠다, 한참을 달래 드렸다.

2022년 3월 21일, 어르신과 함께 집이 앉을 자리를 확인하러 갔다. 거실 자리에 서 보니, 친구가 사는 앞집을 비켜 산자락이 잘 담겼다. 사모님은 앞집 친구와 서로의 집이 앉혀질 자리와 형태를 진작부터 논의했다. 여생을 함께할 친구와는 더 깊은 신뢰와 우정이 쌓였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동네 풍경을 만드는 첫 단추를 잘 끼운 것이다. 이런 것이 나이 들어 현명해지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었다.     



사모님은 보내드린 사진을 보시고 짠한 마음이었나 보다. 먼 곳에서 메일을 보내오셨다.


(2022년 3월 22일)

소장님.

밴드에서 기초공사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있으면 더 즐거울 텐데 생각했습니다. 

‘정말 하는구나’와 ‘이제 도시로 못 돌아가는 거야?’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장님 이하 아는 사람들이 마당에 있는 것, 도면처럼 땅에 그려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기초공사를 시작한 것도요. 신기해요. 

그리고 혼자 있는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이 일었어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허리가 굽었더라고요. 사진으로만 보니 어릴 때 땅에 그린 놀이(오징어놀이)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이 과정을 함께 했으면 더 즐거웠을 거라는 생각을 또 했지요. 

과정을 일로만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니네요.

창호 색상 실키 베이지 좋습니다. 

툇마루는 콘크리트 위에 나무인가요? 콘크리트 빼고 나무인가요? 아마 후자인 듯싶은데요.


메일의 말미에 알루미늄 시스템창호의 색상을 언급하셨다. 내가 창호 색상을 제안 드리고 사모님께서 그 색상을 확인해주시는 내용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인 경우, 창호 발주의 시점은 보통 골조공사가 완료되었을 때다. 콘크리트 공사의 시공 오차는 늘 있기 마련이라 골조공사가 끝나고 개구부의 크기를 실측한 후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조주택의 경우 창호 발주는 기초 작업을 할 때 즈음에 한다. 목구조의 경우, 치수의 정합성이 크기도 하거니와 골조공사의 기간이 짧아 공정이 끊이지 않고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창호 발주를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모님께 창호 색상을 부랴부랴 확인했던 것이다. 사모님께서 메일을 보내셨던 3월 22일 기초를 쳤다. 

앉혀진 기초를 볼 때면 머릿속에서는 상상의 집짓기가 시작되고 순식간에 완성된 집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기에 벽체가 세워지기 전의 콘크리트 맨바닥이 나는 참 좋다.

내가 상상했던 장면과 머릿속 집의 모습이 겹치고 위화감이 없으면 그 집은 대부분 끝이 좋았다. ‘무위재’도 그랬다.


무위재의 기초


집의 바닥이 궁금하실 사모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2022년 3월 28일)

안녕하세요. 

월요일 아침부터 골조공사가 시작된다고 해서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길 건너편 포클레인 하신다는 이상한 이웃이 아침부터 난리시더군요. 참 피곤한 이웃이 되겠다 싶습니다.

이곳이 물이 좀 많은 동네인 것 같아요. 주말에 비가 내리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젖어 있고 습하고 그렇습니다.

기초는 잘 앉혀졌고 높이 계획도 도면대로 시공되었습니다. 

이제 기초 위에 목구조를 얹힐 토대작업을 시작할 거고요. 그 작업을 위해 기초 바닥에 먹을 놓고 있습니다. 

목재와 기초가 만나는 부위가 평평해야 하는데, 기초의 우둘투둘한 부분도 잘 갈아내고 있습니다.

궁금해하시는 툇마루는 콘크리트가 아닌 목으로 시공될 예정입니다. 

이번 주 정도면 뼈대가 설 것 같습니다. 목구조는 이때가 제일 예쁜데, 직접 보지 못하셔서 아쉽네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목구조의 장점은 역시 속도다. 단층이어서 일주일 만에 뼈대가 다 섰다. 

뼈대를 형성하는 스터드의 규격은 투바이식스(2×6)다. 보통 경량목구조를 투바이포 공법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초기 목조주택에 적용했던 스터드 규격이고 요즘은 투바이식스 이상을 적용한다. 보통 경량목구조는 스터드 사이에 단열재를 충진하는데, 투바이포(38×89㎜)는 두께가 얇아 단열 기준을 맞추기가 어렵다. 현재 중부2지역 단열재의 두께 기준은 135㎜로 2×6(38×140㎜)을 적용하면, 스터드 두께만큼 맞춤하게 단열재 설치가 가능하기에 2×6들 표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재가 가볍기도 하거니와 재단이 쉬워 전문적인 목수가 붙어 벽체를 세우면 아침과 저녁이 확연히 다를 정도로 진도가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골조가 세워지는 기간에는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자주 확인하면 할수록 수정이 줄어들고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찌 실수가 없을까, 때로는 도면을 잘못 이해해서 본의 아니게 설계자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공사에 호기롭게 재시공(데나우시)을 관철하고 그것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건축가들을 가끔 본다. 실수가 있으면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떠들 일은 아니다. 장사꾼은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시공사가 장사꾼은 아니지만 일의 손해에 대해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시공사의 실수가 중요한 문제를 만들어낸다면 여지없이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나는 건축주, 시공사와 협의하고 방법을 찾는다.

무리한 재시공은 시공자의 감정을 건드리기도 하고 손해 본 것을 다른 공정에서 만회하려는 마음을 먹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손해는 건축주에게 돌아간다. 시공사 편을 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시공사가 호의를 가지고 끝까지 잘 지어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또한 좋은 집짓기를 위해 필요한 것이니 건축가나 건축주가 함께 애써야 한다는 뜻이다.

외벽과 지붕에 구조 합판이 설치되기까지 열흘 동안 우리는 하루에도 10통 이상의 전화와 뻔찔나게 현장 방문이 이어졌다. 현장의 실수를 줄이고 재시공을 피하기 위해.

4월 중순이 되니 완성된 골조에 투습방수지가 붙고 창호 설치도 끝났다. 목조주택에서 창호 설치 시 기밀테이프 시공은 정말 중요한데, 우레탄폼을 충진하는 정도로 끝내서는 안 되고, 꼭 기밀테이프를 안과 밖에 설치해야 한다. 

창호는 집에서 단열과 기밀이 가장 취약한 외피다. 구조체와 창호 간의 기밀 시공이 되지 않으면 결로나 곰팡이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창호의 내측은 기밀방습을 위한 기밀테이프를, 창호의 외측에는 투습방수를 위한 기밀테이프를 시공한다. 그래야만 내부의 열이 밖으로 새는 것을 차단해주고 동시에 결로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 


투습방수지를 시공한 외벽과 지붕
창호 내측에 설치한 기밀테이프


한 달이 지난 5월 중순이 되니 외벽과 지붕의 마감재 설치가 얼추 끝나가고 있었다.

외벽은 골이 있는 적삼목 판재로 마감했다. 외벽을 목재로 마감하는 것은 선 듯 선택하기 쉽지 않다. 눈, 비에 바로 노출된 외벽의 경우 목재의 변형이 생기기 쉽고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탄화목이나 규화목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고비용이라 모든 현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탄화목은 열처리 목재라고도 하는데, 목재를 섭씨 160~230도로 가압 고온 처리하여 생산한다. 이렇게 하면 목재 내부의 함수율이 낮아지고 천연 방부처리가 되어 변형이 적고 내구성이 좋아진다. 하지만 목재를 태워 만드는 방법이라 목재의 색이 어두워지는 단점이 있다. 규화목은 보통 사용되는 외장 목재에 규화제를 발라서 만든다. 나무를 화석같이 변화시켜 보존하는 방식인데, 이 역시 변형이 거의 생기지 않고 별도의 유지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변형이나 변색 없이 오래가는 나무 외장재를 선택하는 경우는 적나라하게 외부 환경과 맞닥뜨리는 경우이거나 커지는 비용을 감내할 수 있을 때다.

무위재의 처마는 초기 계획 때부터 장소의 발견을 위해 고려한 건축적 장치다. 안마당이 있는 ㄷ자 형태의 평면을 하나의 박공지붕으로 덮을 때 벽과 지붕이 이어지는 형태가 아닌 처마가 돌출되는 형태로 벽 위에 커다란 지붕이 형성되게 했다. 이를테면 몸보다 머리가 큰 가분수 같은 모양새인데, 이는 우리의 오래된 전통가옥에서 볼 수 있는 형태다.

처마는 벽에 눈, 비가 직접 닿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준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수직으로 내리는 비와 집의 벽은 서로 만나지 않고 적당히 내외하며 거리를 두게 된다. 이렇게 처마밑은 보이지 않는 여분의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이 공간은 여러모로 쓰임이 많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꼬맹이 시절, 비가 오는 날에 펼친 우산을 바닥에 내려놓고 우산 아래 숨어서 놀던 때가 있었다. 특별한 놀이를 했던 기억은 없지만, 그냥 아늑해서 좋았다. 처마 밑에 있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참 공사 중인 무위재의 처마 아래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수첩을 주섬주섬 꺼내서 〈처마 있는 집〉이라는 시를 썼다.


처마 있는 집     


빨랫줄 같은 비가 땅을 치고

골목 자욱하게 먼지 오르면

신주머니 쓰고 210문 작은 발 내달았다

처마 밑 제비가 기꺼이 아랫목을

내어준다 부르면 

염치 없이 벽에 등을 대고 누워

가방을 이불 삼아 깜빡 졸던 

비 오는 날 처마 밑은 내 방이었다     


260문 신발로 내달을 땐

구불구불 골목길은 소실점에 사라지고

제비도 처마도 보이지 않았다

수백 개 눈을 가진 거인이 도시를 채우고

밤낮으로 눈을 부릅떠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기에

장대비가 몸을 때려도

신주머니 하나 없는 나는 

무서워 눈을 내리깔고 달릴 뿐이다     


거인들만 사는 나라 강남에

제비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처마 없는 집은 머물 수 없고

비 오는 날 누구의 방도 아니기에

210문 신발의 깊이만큼

나와 제비에게 내어준 처마가

그래서 그리운 까닭이다


처마 밑에 설치한 툇마루는 자연이 등장하는 무대 앞의 객석이다. 눈이 소리 없이 내려 마당에 소복이 쌓이는 무언의 장면과 내리는 비와 처마의 낙수가 들려주는 명료한 독백을 바로 앞에서 관람할 수 있는 자리가 툇마루다. 때로는 무대로 난입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 손을 내밀기만 하면 바로 연극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은 모두 처마 덕분이다.

외벽 재료로 나무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처마 덕분이다. 옹이가 있는 일반적인 적삼목으로 외벽을 마감했다. 눈, 비가 직접 닿지 않아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물론 관리는 필요할 것이다. 1년에 한 번은 오일스테인을 발라줘야 한다. 오일스테인을 바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재료만 구해 직접 바를 수 있다. 톰 소여가 담장의 페인트칠하기를 세상 재미있는 놀이처럼 여겼듯(물론 친구들에게 페인트칠하기를 대신하게 하기 위한 꼼수였지만) 1년에 한 번 정도는 놀이하듯 가족과 함께 만드는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런 수고를 굳이 감내하시라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은 단층집이었기 때문이다. 사다리를 이용하거나 위험하게 어디 올라서지 않아도 처마 밑에 서서 쓱쓱 칠하면 된다. 이런 정도라면 ‘무위’를 외치시는 어르신께도 큰 어려움은 아니겠다 싶었다.

‘시김’이라는 오래된 우리말이 있다. 시김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에 시간이 더해지고 곰삭아 깊은 맛을 내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면 메주로 담근 간장이나 고추장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오래된 가구에서 드러나는 나무의 결이나 빛깔일 수도 있다. ‘무위재’가 이런 시간이 빚어낸 시김의 맛이 드러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거나 인위적으로 멈춘 재료는 맞지 않았다. 비용도 문제였지만 이런 까닭으로 탄화목이나 규화목을 쓰지 않았다.

두 분과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연륜을 드러내는 집, 곱게 늙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처마 덕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고, 제비가 처마 밑에 집을 지으러 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흥부 같은 어르신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지붕과 외벽 마감이 끝나간다
내부 공간도 석고보드 부착이 마무리 되었다


5월 중순에 비계를 철거했다.

비계 철거는 공사 중에 건축가가 가장 기대하는 순간이다. 비계를 철거한다는 것은 집의 외부 마감이 거의 끝났다는 것이고 온전한 집의 모습을 처음 대면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현장이든 비계를 철거한 날것의 몸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비계를 철거한 후 보통의 공정은 외부 바닥을 포장하거나 조경 공사를 진행한다. 무위재의 조경은 공사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법적으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어서이기도 했지만, 보는 즐거움보다 가꾸는 즐거움을 살며 누리시는 것이 좋을 듯해서다. 물론 비용적인 문제도 한몫했다.

안마당에는 강자갈을 깔았다. 잔디는 처음부터 배제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는 어르신에게 잔디 관리를 맡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잔디에도 어르신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그래도 자연의 마감이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선택한 것이 강자갈이었다. 밟을 때 나는 소리가 좋았다. 밟을 때 발바닥에 전해지는 몽글한 느낌도 재미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어르신이 맨발로 나와 안마당을 산책하듯 걷는 장면을 상상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짜릿한 자극에 잠이 깨고 그날의 일과를 정리하는 일이 의식같이 자리 잡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마당 가운데에 나무를 심을까 고민도 했다. 그러다 아무것도 심지 않기로 했다. 여기 안마당은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는 정적인 마당이 아니라 가족이 벌이는 다양한 사건이 담기고 기억되는 가족 모두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비워져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마당이 안마당이었다.

입주를 마치신 몇 달 뒤 사모님께서 보내주신 사진을 보고는 비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손주들은 간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어른들은 툇마루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가족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장소의 발견이었다.




6월 중순이 되자 가구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가구가 설치된다는 것은 집짓기가 거의 끝나간다는 것이다.

설계를 진행할 때 별채에는 붙박이로 책장과 책상을 계획했다. 책장의 가운데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도 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앞집에 사는 친구와 눈인사를 나누고 내키면 마당에서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창이었다.


책장을 계획했던 별채


아쉽게도 실현되지는 않았다. 별채 공간이 작아서 고정된 형태의 가구를 들이는 것에 사모님이 반대하셨다. 이곳은 사모님의 장소라 그분의 의견이 중요했다. 자식들이 자고 갈 때 혹여 너무 비좁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 본인의 욕심을 포기하는 쪽으로 정리된 셈인데, 어미의 마음은 다 그런 것일까? 아쉽지만 이해되었다.

입주하시고 몇 달이 지난 시점에서 사모님께 별채의 쓰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모님은 작은 책장 하나와 앉은뱅이책상 하나만 들이셨다고 했다. 앉은뱅이책상을 들인 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신을 칭찬하셨다. 네모난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면 햇빛을 피해 여기저기로 책상을 옮겨 가며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고 했다. 

차 한 잔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색에 잠기실 때도 있고 음악을 들으며 밖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해 질 녘에 정신이 퍼뜩 들어 깜짝 놀라기도 하신단다.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제대로 장소를 발견하셨구나’ 싶어 절로 기뻤다. 아마도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 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분이 이 집에 바라던 ‘영성이 발현’되는 장소를 스스로 찾아내고 즐기며 사는 모습이 감사했다.

무위재로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잊지 않기 위해 〈장소의 발견〉이라는 시로 남기고 사모님께 보내드렸다. 어르신께서 “당신은 좋겠네” 하셨단다. 질투하시나?


장소의 발견     


빈방에 창문을 넘어 들어온

어린 햇빛이 앉아 있었다

방의 주인은 햇빛의 무례를 꾸짖는 대신

옆에 작은 탁자를 놓아 주었다

마주 앉아 차담을 나누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햇빛을 피하고 싶은 

탁자의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햇빛이 앉아 있어도 빈방이었던 그곳은

탁자가 놓이며 빈방이 아니게 되었다

고마움에 주인은 책 몇권을 올려주고 

따뜻한 차 한 잔 내주었다

탁자는 어젯밤 눌러 쓴 손편지를 기억했고

주인은 탁자 앞에 앉아 

영성에 대해 생각했다

어제도 내일도 해는 손님으로 오고

기도는 오늘과 같을 것이기에

방은 비로소 장소가 되었다  


   



여름이 깊어진 7월 중순에 여주 집 ‘무위재’의 공사는 끝이 났다. 두 분은 드디어 오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무위재’에 입주했다.

입주 첫날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어르신은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늦은 밤 문득 깨어 마당에 나섰다가 아름다운 밤을 보시고는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셨다. 나도 아~ 하고 감탄한 밤의 장면이었다. 하늘로 열린 지붕 사이로 반달이 걸려 있었다. 은은한 달빛이 내려앉은 무위재의 마당이 건넨 첫 환영 인사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다.

‘옛날 옛적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렇게 무위재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결말을 위한 첫발을 무사히 내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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