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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찬 하루를 살아

by 보통의 건축가

꽉 찬 하루를 살아


육신이 치르는 하루치 목숨값이 아까워

바쁜 하루를 보내며 살자 했어

아침부터 시간을 쪼개고 잠을 아끼며 살면

남들보다 하루의 시간을 늘려 산 셈이라 여기고

참 부지런히 살았어

그런데 바쁘게 사는 것과

꽉 차게 사는 것은 다르더라구

바쁘게 살 때는 늘 시간이 고팠는데

꽉 찬 하루를 보내면 포만감이 든다는 걸

여기 양수리에 살면서 알았어


바쁘게 사는 거와 꽉 차게 사는 건

뭐가 다를까

바쁘면 바쁠수록 나는 사라지고 작아져

내가 바쁜 것인데, 바쁜 일 속에는 내가 없을 때가 많더라구

정신없이 일을 끝내고는 대체 난 뭘 한 거지?

라는 의심이 들 때가 많았어


꽉 찬 하루는 내가 만들어

새벽에 일어나 수영을 할 때는 오롯이 물과 나뿐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나를 소외시키는 것이라면

아내에게 이번 달 월급은 좀 어렵겠어 얘기하고

직원들과 낮술을 마셔

늦은 밤 다락에 앉아 다락이 울리도록 음악을 틀고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별을 보다가


어제와 같은 오늘이 없고

오늘과 같은 내일의 비극이 없도록

내가 선택한 시간으로 꽉 찬 하루를 보내

하루가 아깝다는 생각보다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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