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이었던 캐서린 쿡 브릭스 (Catherine Cook-Briggs)와 이사벨 마이어스-브릭스 (Isabel Meyers-Briggs), 그녀들은 오랜 기간 동안 ‘융’의 ‘심리유형’ 이론에 빠져 있었다. 때는 2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시절, 여성인데다가 심리학과 관련된 어떤 분야의 전문 증명서도 제시할 수 없었던 그녀들의 이론은 학계에서 큰 외면을 받았다. ‘성격의 재발견 [원제: Gift Differing/Understanding Personality Type]’이라는 저서를 낼 때 그녀의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아들 피터는 피력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저마다 일상의 삶에서 쉽게 동원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정신적 도구를 한 세트씩 갖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심리적 연장통에 똑같은 기본적인 도구를 담아두고 있을지라도, 각자가 특정 업무에 특별히 편안함을 느끼고 그리하여 더 쉽게 집어 드는 도구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독특한 선호가 서로 어우러져 우리에게 독특한 성격을 안겨주며,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슷하거나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성격의 재발견] 중에서-
바로 MBTI (Meyers-Briggs Type Indicator) 지표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어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재능 혹은 장점은 다르다. 유명 성격 테스트 정도로 여겼던 MBTI가 한 여성의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적쟎게 감동을 받았다.
얼마 전 인터넷상에 올라온 질문 중 학교 숙제로 나온 ‘나의 사용설명서’라는 작문의 도입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는 내용이 있었다. ‘사용 설명서’라… 한동안 개그코드로 많이 이용되었던 단어인 것 같긴 하지만…
장자는 ‘인간세’에서 ‘쓰임’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개인적으론 결국 장단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 모든 만물의 각기 다른 내적 외적 조건들이, 때때론 장점이 되고 때때론 단점이 되는 것이다. 그중 ‘쓰임’이란 결국 장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MBTI의 탄생일화에서 받은 인상과 장자의 철학이 왠지 닮아 보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겠지만, 이 두 일화속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진짜 내가 되어야 나의 장단점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 사용 설명서라는 말은 좀 불편하다. 우리가 거대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작은 부품같은 존재라는 것을 당연시하는 느낌을 준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처럼 말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나온 숙제라니…
장자도 이사벨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했고 누구나 다 자신만의 진정한 모습으로 언젠가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의 즐거움보다 남들에게 자신의 효용을 필사적으로 호소해야 하는 여유 없는 오늘이 조금 씁쓸해진다. 바꾸고 싶다! '나'사용 설명서 대신 '내'가 되는 안내서로...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