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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Jul 16. 2024

나의 사이코 (1)

창작된 심리 스릴러

*사이코 : 과거에 만난 남자들 험담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니는 매력적인 여자. 살다가 그녀를 만나면 얼른 차단하길 권한다. 



 완벽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신이 저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줄도 모르고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물 여덟이 되고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눈꺼풀을 들고 있기가 힘겹습니다. 정신이 흐릿한것이 막 꿈에서 깨어난 느낌입니다. 가지고자 했던 것들을 마침내 가졌습니다. 결혼에 진지한 남자와 중위소득 5분위를 가졌다는 건, 마침내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고 대학시절 잠 못 이루던 걱정과 불안의 늪에서 안정의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 아닐까요. 



 몸이 부서져라 노력했더니 겨우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들은 저를 모릅니다. 더불어 우리 가족을 모릅니다. 오래 전부터 오늘이 올 것 같았습니다. 무른 복숭아처럼 자아를 소중히 만졌던 중학생 때부터 였을 겁니다. 남자들과 콘돔 없이 섹스하지 않아도 준비되지 않는 처지로 아이를 베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도 누군가를 책임져야하는 운명이 올 것같았습니다. 



 언니이자 첫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은 둘째에게 재능을 주었는데 첫째인 저는 둘째가 그 사실을 알기도 전에 그 재능이 보였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둘째의 재능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질투를 느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들과 같은 스물 셋의 나이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저는 매달 일정액을 동생의 통장에 입금해 왔습니다. 동생은알바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엔 통장 잔액 300원으로 버티고 있다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그녀는 정부가 청년들에게 주는 자립지원금만큼의 돈, 그러니까 30만 원 안팎의 돈마저 저에게서 받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천 원짜리 초콜릿 바 하나 사 먹지 못하게 되자 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막상 딸린 가족을 책임지고 보니 그 경험이 제 인생의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같은 나이 친구들이 월급만으론 미래가 없다며 주식과 재테크를 공부해야 한다며 삼겹살을 앞에 두고 열변을 토하는 동안 저는 말을 아끼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저의 존재가 둘째를 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존재만으로 귀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말을 줄이자 오히려 사람들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제게 다이어트로 입지 못할 옷과 커피 기프티콘을 주었고 저는 그것들이 제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회사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맛도 인테리어도 별 볼 일 없는 식당 앞에 줄을 서고 얼굴을 마주 보며 깔깔 웃습니다. 저는 목에 건 사원증을 만지작거리며 백일몽을 떨쳐 내고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오후 업무를 하려면 나르시시즘이 짙은 백일몽을 떨쳐 내어야 했습니다. 이럴 때 의지할 사람이 가족이었습니다. 



 엄마 말고 이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엄마 공감 능력을 따라갈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겁니다. 엄마는한국 드라마계의 얼리어댑터였습니다. 엄마는 오십 대의 나이에도 통신사 TV에서 인터넷 구독 서비스로 무사히 넘어왔으며, 그녀의 관심사는 K 로맨스, K 스릴러, K 드라마 등 한 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그물처럼 넓었습니다.


  “어. 나무야.” 언젠가부터 엄마는 제가 거는 전화를 인생의 일순위로 두고 살았습니다.마트의 매대 곁에서 물건에 관해 묻는 손님을 앞에 두고도 악착 같이 저와 전화를 이어 나가려고 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엄마. 나 이번 달 성과급 탔어. 내가 만나는 그 사람과도 고비를 잘 넘겼고.”


“그래? 정말 잘 됐다. 계속 바랐던 거잖아.”


“응.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이뤄질 준 몰랐어. 난 어떤 곳에 있어도 내가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같이 입사한 동료들과 경쟁해서 이기려고 했어. 연애할 때도 데이트 상대방을 매력으로 이기려고 했지. 그런데 일도 연애도 잘 안 풀렸어. 내가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싶어서, 이번엔 힘을 풀고 주변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 평가를 잘 넘겼어. 불가능할 거라고생각했던 연애도 시작했고”

 

“그래. 그렇게 살면 된다. 내가 보기에도 너 너무 노력하며 살았어. 이제 좀 편안하자.”



안개처럼 뿌연 백일몽이 걷어지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현실이 선명해집니다. 연락을 시작한 후로 하루도 단절된 적 없는 남자 친구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담담하게 전하는 편이었고, 남자 친구는 저의 담담한 고백 속에서도 기쁨과 슬픔을 찾아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달라서 떨어져 있는 동안엔 마치 다른 우주를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행히 오늘 데이트가 있었습니다. 



 “내가 자기 회사로 찾아 갈게. 만날 가는 포차에서 보자.”
 “콜. 딱 6시 정각에 내려 갈게.”



 이 남자와 하는 거의 모든 데이트가 먹고 마심이었습니다. 그는 특정 음식 메뉴에 거부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명백한 한국인 입맛이었습니다. 일식과 중식과 양식을 빼고 나면 메뉴 선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닭갈비와 불고기, 삼겹살과 같은 메뉴를 우리 두 사람의 회사가 있는 홍대에서 찾으면 다음 데이트 장소가 나왔습니다. 만나기 간단한 남자라서 좋았습니다. 회사의 업무도 적당히 할 만한 일이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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