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된 심리 스릴러
*사이코 : 과거에 만난 남자들 험담을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니는 매력적인 여자. 살다가 그녀를 만나면 얼른 차단하길 권한다.
첫째는 둘째의 재능에 투자했고 둘째는 정신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날 직장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계속 왔습니다. 홍자유가 폐쇄병동 공중전화기로 거는 전화였습니다. 자유는 제가 회사에 묶여 있다는 걸 알고도 그랬습니다. 워낙 연락이 빗발쳐서 10분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언니. 잘 지내?”
가족끼리 주고 받는 당연한 안부 인사가 어색하게 들렸습니다. 더 위험한 인생을 사는 자유에게 제가 물어야 할 질문 같았으니까요.
“나보단 네가 힘들겠지.”
“그러게… 언니…. 내가 날 죽이려고 했어.”
“무슨 일이 있었어?” 홍자유가 대학가를 나체로 돌아다닌 모습이 촬영되었음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알긴 알까요. 아무리 정신병자라도 본인인데.
“자동차가 달려오는 도로로 뛰어 들었어. 그때는 세상이 연극 오디션 현장 같았거든. 난 배역을 따내야 하는 배우고. 마치 여자 주인공처럼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달렸어. ‘할 수 있어. 해내야 해.’ 라고 생각했어. 죽음을 향해 돌진하면서 그게 마치 용감한 일처럼 느껴졌어.”
자유의 말을 잘랐습니다.
“옷은. 옷은 잘 입고 있었니?”
“어. 그 전에 벗긴 했지만, 다시 입었어. 언니도 내가 옷을 입고 있던 걸 지구대에서 봤잖아.”
홍자유가 가시 돋친 투로 말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자유였다면 부끄러워서 울었을 테니까요. 자유라서 찡그린 얼굴로 인정할 수 있는 겁니다.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달린 후로는?”
“도로로 뛰어 들었어. 차에 치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그랬어. 그 차가 정확하게 내 바로 앞에 멈춰 설 거라는 걸 말야. 차와 부딪히지 않았지만 여자 주인공처럼 쓰러졌어.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난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어. 중요한 오디션을 마친 기분이었거든. 내가 누가 봐도 완벽한 배우라고 생각했어. 구급차가 왔고 경찰차가 왔어.”
“그때 구급차를 탔어?”
“아니. 구급차도 경찰도 따돌렸어. 택시를 탔거든.”
저도 모르게 흥분했습니다.
“환장하겠네.”
그러자 자유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우리는 침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화 시간이 십 분을 넘길 거라는 두려움보다 그 모든 일을 경험한 자유가 결딴날 거란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도로로 뛰어 들었다고?”
저는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져 묻는 경찰처럼 행동했습니다. 자유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언니. 난 자살이 극단적 선택이라는 견해에 동의해. 자살이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은 우리가 살면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죽음 말고 많다는 거잖아. 난 그날 밤에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 하지만 내가 나를 죽이려고 했어. 내가. 내가 말야. 난 병원으로 끌려와서 약을 먹을 때까지 나를 죽이려는 날 막을 수 없었어. 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린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러니까 결국.
신이시여. 하마터면 소중한 자매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답니다.
“정말 다행이다.” 한국어가 이상하게 어려웠습니다. “고생했어.” 인공 지능보다 나을 게 없는 짧은 말들만 나왔습니다.
“언니. 어제 밤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어떡하지?”
연극 무대의 불이 꺼집니다. 한 줄기의 빛이 제 사랑에게 닿아 반짝거립니다. 사랑하는 내 동생은 발레리나와 같은 아름다움 몸과 움직임을 가졌고, 그리고 아나운서의 단단한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강인한 영혼을 담은 두 눈이 제 영혼을 붙잡습니다.
“네 번째 입원은 없을 것 같아. 만약 조현병이 또 도지면 난 그 전에 죽을 거야.”
낳아주신 아버지. 제 팔자는 누가 꼬았을까요. 어째서 그녀를 사랑하는 것 말고 선택지가 없는 걸까요.
“네 번째 입원은 절대 없어야 해. 나 정말 죽기 싫어 언니.”
세상에 진정한 어른이 있다면,
부디 이 두 어린 생명을 구해주십시오.
크리스천이었다면 일요일 교회 미사에 참석했겠지만, 아무리 간절한 상황 속에서도 종교를 만들고 하나님을 받아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토요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어느 스터디 카페로 갔습니다.
그곳에 토요일 아침을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만난 목표 지향적인 사람들의 모임이있었습니다. 연령대는 다양했고, 경제 신문을 읽고 대화를 나눈다고 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홍나무가 일등’이라는 예전 팀장을 그곳에서 찾았습니다. 회사에서 쫓겨난 전 팀장이 이 모임을 운영하는 건 인스타그램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워서 온갖 파티로 어수선한 금요일 밤에 경제 신문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주제 한 가지를 발표했습니다. 그 와중에 대화가 샛길로 새 버렸고 부동산 투자를 하는 팀장이 최근에 6가구로 이루어진 아파트 한 동을 구매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회사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이미 화석이고, 그는 부유해졌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만 그 사실을 몰랐나 봅니다. 그가 리더십을 잃은 실패한 리더라는 소문이 아직도 회사에 떠돌고 있었거든요.
팀장은 대여섯 명 회원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하고만 대화를 했습니다. 제가 발표할 차례가 되고 그가 답을 할 차례가 되었을 때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반면, 활기를 띤 사업들이 생겼다는 것이 요지람 말이죠?’처럼 이익이 되는 정보만 주고 받고는 사람들의 물살을 타고 교황처럼 멀어졌습니다.
저는 질문 하나를 마음 속에 품고,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책임지는 건 결국 돈입니까?’
버림 받은 사람처럼 서운해졌습니다.
남자 아이는 온화한 보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여자 아이는 중 단발 C컬 속에 예쁜 보조개를 구부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더 큰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직장인이었습니다. 모임의 모두가 그런 직장인들이었습니다.
그들과 칼국수를 먹다가 눈물이 고였습니다. 정신 병원에 있는 홍자유를 구하고 싶은데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곳에 제가 있었습니다.
“맛있네요.”
눈이 젖어도 눈물이 떨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제가 우는 줄 몰랐습니다. 손가락으로 조금씩 눈에서 눈물을 떼어냈습니다.
여자 아이가 꺄르르 웃었습니다. 남자 아이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얘는 여자 아이가 지를 보고 웃을 때만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고백하려고 준비하는 남자 아이였습니다. 여자 아이 쪽을 다시 보는데 얘는 같은 여자지만 속마음을 모르겠는 타입의 여자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그 전까지 ‘첫 사랑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 남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면서 첫 사랑을 못 잊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홍자유밖에 없었습니다.
첫 사랑을 못 잊고 있어, 언니. 벌써 6년이 지났는데. 그때 기억이 아직도 또렷해.
그러고 홍자유는 매력 없는 남자들에게 고백을 하고 다니며 상처 받을 때마다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어느 순간 홍자유의 기행을 분석하길 멈추었습니다. 분석하지 말고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홍자유는 그런 사람이었고, 저는 그냥 그런 홍자유를 사랑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