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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Aug 01. 2024

나의 사이코(6)

창작된 심리 스릴러

‘뭔 개똥 같은 소리야?’라는 말이 가슴에서 치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꾹 눌렀습니다. 


 불합리한 일에 반기를 들겠다고 불 같은 성미가 위장에 차오르는 것을, 코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입으로 흐르는 호흡으로 게워냈습니다. [개똥 같은 소리] 같은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초자아가 명령합니다. 초등학생처럼 길바닥에 버려진 거친 말들을 주워 모아 가지고 놀 나이는 끝이 났다고 말입니다. 


 불 같은 성미는 젊음입니다. 젊음의 혈기를 진정시키는 호흡은 훈련의 결과입니다. 저는 훈련된 용병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홍자유를 보호하는 것인 용병입니다. 


 이십 대 초반부터 학자금 대출은 기본, 입사에 필요한 자격증 비용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아르바이트 그리고 공부에 공부를 하며 이십 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최저 임금에 웃도는 돈으로 홍자유를 부양하면서 명문 국립대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한국에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도왔고, 어머니도 일터로 나갔습니다. 언제나 불합리한 일로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들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거친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그들의 편에 설 수 없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이 생겨서 가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누구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거친 상황 속에서도 말을 부드럽게 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신청]을 밟고 있어. 그 종편 채널 뉴스가 오보라고.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적시]를 했으니 뉴스를 내리고 정정 보도를 해달라는 요청을 방송사에 이미 했어. 일주일 뒤에 바로 결과가 나올 거야. 방송사가 허위 사실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계속 떠들도록 내버려 둘 건 아니지?”


 그 친구가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란 단어로 겁에 질려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익명 속에 숨은 회사 사람들 절반을 적으로 돌릴 것인가. 조직된 공인들 편에 설 것인가. 저는 친구가 현명하게 둘 사이에서 양자 택일을 해내길 기도했습니다.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적시라는 게시글을 가만히 둘 순 없지.”


 그날 밤 워크넷에는 게시글이 대량 박멸됨과 동시에 공지글이 올라왔습니다. 공지를 올렸던 것은 그나마 합리적인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 운영자는 알아서 삭제하겠다고 했지만 저는 그녀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그녀를 피씨방으로 끌고 가려고 했는데 운영자가 그만한 사양의 피씨가 동호회 실에 있는데 뭐하러 가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LOL 동호회실로 가 저녁으로 신라면을 먹으며 게시글 삭제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MRO 구매팀장, 나체, 조현병, 무섭다, 한 번 하고 싶다 등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삭제 해버렸습니다. 대강 해치워버리려는 운영자에게서 마우스를 빼앗아 집요하게 삭제했습니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동호회실의 열기 때문에 운영자의 볼이 빨갛게 상기되었습니다. 그녀가 화면을 보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고마워.”


 참 의외의 말이었습니다. 그녀가 말을 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구나.”

 

 저는 운영자의 눈동자로 과거를 짐작했습니다. 그 눈동자에는 이렇게 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가끔씩 미치도록,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을 모두가 보는 공개적인 장소에다 새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날 밤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를 일곱 글자로 바꾸었습니다. 


 돈으로 사랑하자. 


 저는 홍자유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을 사랑보다 앞에 두어야 하는 용병입니다. 핸드폰 앨범을 뒤져 동생과 둘이서 찍은 사진을 찾았습니다. 인생 네 컷 스튜디오에 가서 찍은 스티커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일 년 전 홍자유가 두 번째 입원을 했을 때 퇴원 기념으로 찍었던 사진이었습니다. 우리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같은 얼굴인 우리가 서로를 편안하게 끌어 안고 있다니 거짓말 같았습니다. 


 홍자유가 세 번째 입원을 한 순간, 사랑하는 만큼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이날처럼 끌어 안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 식사 비용과 인생 네 컷 촬영 비용을 영원히 대겠습니다. 그러니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홍자유가 역사에 남을 예술가가 되려는 목적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세상으로부터 그런 홍자유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으니 우리는 사랑 없이도 태어난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홍자유의 입원 문제를 회사 업무 다루듯이 처리했습니다. 전화 통화는 절대 십 분을 넘기지 말 것, 낮 동안엔 점심 시간에 연락할 것, 감정은 각자 다스리고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말할 것. 


 제가 아는 홍자유는 이렇게 제약을 걸면 불 같이 화를 냈습니다. 음악 하는 예술가는 다 이렇게 사는 걸까요. 그녀는 늦은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오전을 홀랑 다 날렸습니다. 겨우 점심 때 연락이 닿으면, 어제 꾼 꿈이나 요새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았습니다. 


 그런 자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영양보조식품을 보내줄 수 있을까? 유산균과 오메가3 비타민 C, D 같은 것들로.”


 자유가 하는 말들이 구매 팀 업무를 배정 받을 때처럼 냉정하게 들려 제 쪽에서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병원 생활은 어때?”

 “내가 바닥에 닿았다는 생각을 매일 해.”


 저는 그녀가 있는 병원은 서울 바깥 경기도, 저소득층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었습니다. 병원 비를 내지 못할 환자들이 있는 만큼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운영된다고 들었습니다. 홍자유는 한 번도 이런 사립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입원한 곳은 모두 대학 병원이었습니다.


 “여기 환자들이 좀 험악하게 생겼거든. 이빨 절반이 없어 잇몸만 남아 있는 사람을 둘이나 봤어. 보통 그러면 임플란트를 심잖아? 못 그러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 였네. 눈알이 돌아간 사람들도 있어. 눈동자는 올라가고 흰자만 보이는 거야. 이 사람들 특수 분장 필요 없이 바로 공포 영화에 출연하면 되겠더라고.”


 그러고 자유는 실 없는 농담을 했다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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