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입시를 잘 치르고 취업을 무사히 해 결혼과 육아를 해내면 그뿐
이십 대는 자기 계발과 공부일까요. 아니면, 연애와 여행일까요. 남자친구 종현이는 한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제 인생의 책장을 전자에서 연애와 여행으로 넘겼습니다. 만약 종현이가 없었다면 서울을 떠나 목적 없이 부산으로 여행 인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까지 저는 모든 소비를 기록했고 고정비를 찾아 월급 받는 날 결제하는 식으로 돈 관리를 해왔습니다. 그런 제가 부산을 여행하는 동안 갑작스러운 지출을 만났고, 그다음엔 과연 다음 월급 받는 날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아슬아슬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약한 게스트하우스 여자 도미토리룸은 문 벽에 못을 박아 화관을 걸어 놓았습니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종현이의 꼭 끌어안았습니다. 우리는 다음 날 보기로 했습니다. 그 후 문을 열었는데 도미토리룸의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저녁 열한 시였으니까요. 문을 닫자마자 문 뒤에 있던 외국인과 마주쳤습니다.
‘Hello.’
미리 말씀드리면, 전 영어를 잘하지 않지만 괜찮은 토익 점수를 가졌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하는 정중한 인사는 ‘Hi’가 아닌 ‘Hello’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사한 후에 무릎 위에 가방을 놓고 폼클렌징과 수분크림을 찾았습니다.
“미리 사과드려도 될까요?”그녀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영어로 긴 대화를 하게 될까 봐 미리 긴장하고 있던 저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그녀를 보았습니다.
“제가 내일 엄청 일찍 나가야 하거든요. 그쪽을 깨울 수 있어요.”
“뭐. 그 정도야 괜찮죠. 서울에서 온갖 소음이란 소음은 다 겪어봤어요.”
“아. 서울에서 오셨나 봐요?”
“그럼 그쪽은 어디서 왔어요?”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왔다고 대답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거제도에서 드로잉을 가르치던 외국인 강사였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는 5년이 되어간다고 했지요. 그녀는 내일 아침 비행기로 오키나와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무렵엔 뻔한 이야기였습니다. 엔화가 전례 없이 강세여서 제주도 여행보다 일본 여행이 훨씬 저렴했으니까요. 그녀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겨우 부산 여행을 해낸 제가 곧바로 일본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남자친구도 저도 평범한 직장인이어서요. 휴가가 길지 않아서 일본은 무리겠어요.”
그러자 방금까지 일본 여행을 꼭 가야 한다고 강조했던 외국인이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그녀는 조금 공백을 가진 후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요. 보통 다들 그렇죠.”저는 그 짧은 태세전환에 깃든 배려심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물어보고 소셜미디어 친구가 되자고 했습니다. 그녀가 더 궁금해졌거든요. 서울의 평범한 직장인이 거제도에 살던 외국인 입시 미술 강사를 만날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혼자 하는 거예요?”
그녀는 노마드여서 한국에 오기 전 멕시코와 캄보디아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우연하게도 저를 만난 그날은 그녀가 거제도를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한국어가 유창해 서울 유학원에 합격했는데 이대로 한국에 이민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3년 전 인스타그램 피드부터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진들이 그녀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혼자였단 걸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에 거제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가끔씩 저는 소셜미디어에 올려진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읽곤 했습니다. 한때는 이 능력을 혐오스러운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능력은 여동생을 스토킹 하면서부터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동생은 저와 일란성쌍둥이이면서 점점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인간으로 자랐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남긴 데이터들을 읽고 분석하면서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려고 했던 노력이 이런 능력을 만들어냈습니다.
도미토리 외국인은 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양이를 안고 볼에 부비는 사진이나 지저분한 차체에 몸을 기대 팔을 활짝 벌린 대낮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톰과 제리’의 톰 색깔 조끼를 입은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그러다가 3개월 전부터 갑자기 해상도가 깨진 저녁 무렵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피어싱을 찬 귀와 문신을 새긴 목선이 이목구비 없이 등장하는가 하면, 힙합을 애호하는 사람들처럼 작업복처럼 주머니가 있는 까만 바지와 라지 사이즈 티셔츠를 입고 너무나 괴상해서 눈을 뗄 수 없는 자세로 삐딱하게 서 있었습니다. 저는 혹시 저도 모르는 사이 이런 자세가 취향인 팬덤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어서 좋아요 수를 확인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좋아요 수는 3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만한 일이 있었던 거죠?”
외국인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방어기제를 건드렸는지 모릅니다.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요.”
그녀는 머리카락을 까맣게 염색했다. 원래는 어떤 색깔이었을까. 가장 자연스러운 머리색을 버리고 한국인처럼 까맣게 염색한 까닭은 무엇일까. 더불어 귀 바로 아래까지 바짝 자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아.”하고 외국인을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에겐 계속 질문에 질문을 하게 되는 힘이 있네요.” 외국인이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다음 날 아침 일찍 김해 공항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여행자라서 그래요. 여행자끼리 만나면 일상에선 하지 못했던 말들을 솔직하게 하게 되니까요.”
“그렇군요. 죄송하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볼게요.”이번에 저는 한국 남자 가수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팬인가요?”외국인이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얼굴과 몸에서 그 남자 연예인이 아른거리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나니 기를 쓰고 서울에 가고 싶어 졌어요. 처음엔 팬심이었는데 이제는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워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요. 나무는 가지고 싶은 게 없나요? 이십 대잖아요.”
그날 밤 그 어떤 말보다 가슴에 박힌 말은 ‘여행자끼리 만나면 일상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솔직하게 하게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일상에서 만났다면 그 외국인과 저는 다른 장르의 인간이라 스몰 토크만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치관이 달랐습니다. 이 사람은 공기처럼 국경을 넘으며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이젠 가장 좋아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불을 지피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땅과 같은 사람이라 오래된 것들을 고집스럽게 지켜왔습니다. 인생이란 입시를 잘 치르고 취업을 무사히 해 결혼과 육아를 해내면 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들에게 저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동생 홍자유를, 남자친구 종현을 물처럼 형태를 바꾸며 감싸 안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땅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외국인에게 서울에 집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경기도 집부터 가지려고 청약 통장에 매달 저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인에게 물었습니다.
“서울은 쉽지 않아요. 감정 하나 만으로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나요?”
“물론 두렵죠. 두려워요. 하지만 그가 제 인생에 의미를 주었어요.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대도시가 아니었어요. 지루하고 따분하고 남은 인생도 시골에서 끝나는 건 아닐까 했지요. 이 남자 덕분에 드디어 서울에 가보는 거예요.”
그 외국인의 나이는 서른 넷이었습니다. 제가 스무 살에 해낸 일을 그녀는 서른넷에 해내게 되었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사실에는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것 이상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외국인에게 등을 보이고 누워 입시, 취업, 결혼, 육아라는 기다란 열차를 떠올렸지만 어느 곳에서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펑. 펑
부산 광안리의 불꽃놀이였을지도 모릅니다. 펑. 펑. 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