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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 J Jun 07. 2024

다래끼에는 반대편 손가락을 묶어

친구의 민간요법

이번에도 다래끼인 줄 알았다.

몇 달 전 다래끼를 앓았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었기에.

병원 예약을 하면 또 어차피 가라앉을 때쯤 의사를 보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그러려면 집에서 관리라도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것도 못했다.

눈이 불편하다, 뜨겁다, 어 눈물이 난다, 어 맥박이 뛴다.. 이러다가 어느 날 밤 증상이 좀 심해졌다.

눈이 피곤하면, 몸 전체가 피곤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일찍 누워버렸다.


마침 한국에서 톡이 온 친구가 안부를 물어준다.

“다래끼가 난 것 같은데, 한국 같으면 그냥 길 가다가 병원에 들어가 약 받아 오면 그만인데, 이놈의 나라는...”라고 시작하는 불평을 한참 했다.

뜻밖에 친구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래끼가 난 눈 반대쪽 손 가운데 손가락에 실을 묶어 놔"


친구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도 뜻밖이었는데, 해결책 자체가 더 뜻밖이다.

뭔가 해괴하지만, 일단 시도는 한다.

실로 손가락을 묶는 것조차 듣는 것과 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막상 하려니 어렵다.

확실해져야 결재하는 타입인 친구에게 몇 번의 퇴짜를 맞은 후 겨우 묶어놓았다.


꾹꾹 눌러 담고 안 하려던 질문을 하고 말았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어?"

대답과 협박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답이 왔다.

"낫는다고 믿어야 낫는다 불신지옥"


그냥 민간요법이 아니고, 무려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방법이라고 한다.

서울대 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던 다래끼를 이 방법으로 해결한 후, 온 가족이 이렇게 실 한줄로 다래끼를 퇴치해 왔다고 한다. 다래끼가 난 초기에 해주면 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점점 귀가 커지며 펄럭였다. 앞으로는 미국에서 다래끼가 나도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소중하게 실을 묶어 두고 자고 일어났으나, 상태는 전날밤보다 훨씬 심해져 있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 정도면 urgent라는 마음으로 한 번도 안 가본 urgent care로 달려갔다.

다래끼가 아니었다. 양쪽 눈 다 감염이란다.

처방받은 항생제 안약이 즉각적인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제 나으리라. 


집에 돌아와 아직 풀지 못했던 손가락 실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남편은 실을 보더니, 'what..? well..? Gosh..."  류의 미국 추임새를 넣는다.




손에 있는 건 이제 실이 아니라 쥐고 있는 항생제이지만, 

그러나 친구, 나는 너를 믿는다.

만약에 다래끼였다면 나는 분명 말끔히 나았을 것이다.

다래끼가 아니었고, 더구나 한쪽눈이 아니라 양쪽이 다 감염되어 있었다니 효험이 있으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너는 집안에 내려오는 고급비법을 공유해 주었다.

효험이 없던 건 네 탓이 아니다.

다음에 또 다래끼가 난 듯하면, 얼른 다시 반대편 손가락에 실을 묶어보겠다.


다래끼가 날 때마다 이제 너와 손가락 실이 생각날 것이다.

다래끼는 싫지만, 나는 그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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