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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의 혼란 속에서 배운 것

by 대건

새로운 팀으로 옮겨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차에, 국가정보망이 화재로 마비되었다. 그 여파는 곧바로 우리 택배 시스템에도 닿았다. 전산이 멈추자 분류 작업은 엉망이 되었고, 물건들은 뒤섞인 채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평소처럼 PDA로 확인할 수도, 미리 구역별로 나눠진 물건을 받지도 못했다. 결국 기표지에 적힌 주소만 보고 직접 물건을 골라내야 했다.


하지만 주소만 보고 물건을 구별하려면 그 물건이 어느 기사에게 속한 것인지 알아야 했다. 문제는, 이 팀에 온 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은 나로서는 주소를 봐도 누구의 구역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물건을 하나 집을 때마다 옆자리 동료나, 평소 말을 섞어본 적 없는 다른 기사에게까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있던 사람들은 주소만 봐도 단번에 구역이 떠오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주소를 두고 다시 물어봐야 했을 때는 오히려 “아까도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책까지 들어야 했다.


몇 번이나 같은 곳을 또 묻느냐는 말을 들을 때면 나 자신도 속으로 자책했다. 하지만 물건을 하나씩 물어보고 일일이 메모할 여유가 없었다. 뒤섞여 도착한 물건이 너무 많아 그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하나라도 더 빨리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일을 이어가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단기간에 모든 구역을 익힌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 분류가 마무리되었다. 일이 한창 정리되고 내 자리로 돌아가려던 순간, 한 동료가 다가와 말했다. “너무 무리해서 모르는 건 그냥 묻지 말라.” 아마도 내가 계속 질책을 당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는 눈치를 보듯 작게 덧붙였다. 모르는 게 있으면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하지만 분류 작업 중에는 그가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한 가지를 물어보기 위해 물건을 들고 그에게까지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나는 친절한 설명을 바라진 않았다. 다만, 그가 “너무 모르는 것 같다”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마다 그 말이 고스란히 내 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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