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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수 May 02. 2024

봄, 느긋한 쉼표가 필요해

그때 그 시절 참 좋았지

어느 봄날 오후 엄마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논으로 갔다. 살랑이는 바람이 나를 감쌌다. 햇볕은 따스해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작은 가방에서 칼과 검은 봉지를 꺼내 누렇게 마른 풀을 헤치며 쑥을 찾기 시작했다. 이른 봄이라 아직 땅이 단단했다. 동생과 나는 달리기도 하고 논두렁을 따라 걷기도 했다. 엄마 손에 들려진 검은 비닐봉지에 연녹색빛 쑥이 쌓여간다. 잎과 줄기에 달린 보송한 털이 봄나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발로 풀을 헤치다 작고 귀여운 꽃을 발견했다. 엄마는 냉이꽃이라고 했다. 덥수룩하고 뿌리가 긴 냉이와 작고 가는 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참 생각했다.

 

한 시간즘 지났을까. 엄마는 눈에 띄는 쑥은 모조리 캐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칭얼거리려는 순간 엄마의 가방에선 빵 봉지가 나온다. 손가락보다 길쭉한 빵 안에는 잼도, 앙금도 없었지만 참 맛났다. 빵 하나 물려주면 얌전해진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다. 다 같이 앉아 간식을 나눠 먹었다. 말없이 풍경을 바라본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떠오른다. 논 뒤쪽은 아파트와 도로가 있다. 차도에 이따금 버스와 자동차가 지나간다. 저 멀리 논 앞쪽을 보면 작은 산의 나무들이 보인다. 엄마가 걸을 때마다 나는 마른풀의 바스락거림 봄바람, 연둣빛 쑥이 가득 찬 비닐봉지, 자연스레 살아 숨 쉬는 자연과 그 순간이 그림 같아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어릴 적 봄날은 자유롭고 느긋했는데 지금은 그러하지 못하다. 마흔의 봄은 여유롭고 느긋할 수 없는 걸까. 간신히 여유를 찾아 놓으면 외부에서 일들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이 문제들을 능숙하게 다루게 되면 그때는 평화로움이 찾아올까? 인생이라는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되어 시뻘겋게 달궈진 감정과 경험을 두드려 끝없이 담금질하는 기분이다. 이쯤이 되면 감정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엄마와 동생과 쑥을 캐러 갔던 그날이 내 인생 가장 평화롭던 시간이었다. 남은 인생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 잠시 멈춰 여유롭고 느긋하게 오후를 즐겨도 늦지 않다. 그래야 멀리 간다. 그 옛날 쑥 캤던 곳으로 아스라이 나를 데리고 간다. 봄이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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