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우정
저는 엇비슷하게 균질한 것들만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숨막히는 편인데, 수영장에 오는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점도 좋았어요.
성별도, 연령대도, 체형도, 수영복 색깔이나 영법의 진도도 다양하게 섞인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기 운동에 몰입해 있는 그 분위기가 편안했습니다.
시간이 허락할 때는 주 5일 수영을 했습니다. 수영이 좋고, 성실하게 수영을 다니면서 발전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어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접영까지 할 수 있게 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형광색 오리발을 끼고 느긋하게 몇 번이고 레인을 왕복하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죠. 나도 저렇게 오래 수영하고 싶다고.
p.72, '젖은 미역의 시절을 보내는 법', 황선우 X 김혼비,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새벽 6시, 수영장의 어둠이 걷히는 시간이다. 센터 문이 열리기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각자 준비운동을 하다가 물에 들어간다.
종종 만나는 어르신 두 분이 계신다.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수영장에 오신다. 한 분은 나홀로 평영을 여러 바퀴 하시고 걸으시다 가신다. 다른 분은 한참을 걷고 스트레칭 하다가 마무리만 자유형 1바퀴, 배영 1바퀴 하신다. 두 분 다 젊었을 적에는 수영에 진심이었다가 이제 연세가 드셔서 물속 걷기를 주로 하게 되셨다고 한다.
오늘 수영장에 들어가니, 레인 끝에서 연보라색 수모와 수경을 쓰고 누군가 반갑게 손을 흔드신다. 진짜 할머니시다. 정확한 연세는 모르지만 아흔쯤 되어 보이신다.
여든쯤 되어 보이는 젊은 할머니는 인사를 건네면 항상 "하하하~" 웃으시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신다. 신상 수영복을 구비하셔서 고우시다 했더니 또 하하하 웃으신다.
"오늘, 덥다. 땡볕이니 모자나 양산 쓰고 다녀요. 조심해야 해."
"오후부터 비가 많이 온다네. 어디 나가지 말아. 미끄러워."
어르신들이 더 조심하셔야 할 텐데, 내 걱정을 해주신다. 땅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할 일 없을 것 같은 공통사가 하나도 없는 우리인데. 물속에서만큼은 반갑다.
학기 중에는 고딩인 작은아이가 등교할 때 같이 나서고, 방학에는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수영을 하고 온다. 학기 중에는 아침 7시반, 방학 때는 새벽 6시가 주로 나의 수영장 입수시간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새벽이나 오전 강습이 없다. 오직 자유수영만 있다. 자유수영을 매일 나와 같은 시간에 오는 분들은 대개 수영에 진심인 분들이다.
내일의 오수완을 위해 오늘을 사는 수영에 미친자. 일명 수친자. 아무리 내향형이라도 매일 수영에 진심인 분들 1년 넘게 만나다보니, 목례에서 어느덧 간단한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 아저씨던, 젊은 할머니건, 진짜 할머니건, 할아버지건 말이다.
책 속의 "형광색 오리발을 끼고 느긋하게 몇 번이고 레인을 왕복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나의 수영장에도 있다.
연보라색 수모를 쓰고 평영을 하시는 어르신, 신상 수영복을 입고 물속을 걷는 어르신. 나이도, 관심사도 다 필요없다. 수영장에서는 모두가 다 친구다. 40대이건 90대이건.
나이가 중요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나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있다니. 물이 만들어주는 평등함이 아닐까. 물 속에서는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물과 만나고 있을 뿐이다.
책상에 앉아 시원한 물속을 상상한다. 내일은 내가 먼저 손 흔들어드려야지. 그것도 양손으로, 매우 크게.
#수친자 #자유수영 #수영장친구 #오수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