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서 건진 수영복
'오늘 패션도 탈의실에서 입고 벗기 편한 츄리닝으로 입자.'
'집게핀이 예쁘기는 하지만, 수모를 쓰려면 고무줄이 필수지.'
'하지정맥용 압박스타킹은 수영장 다녀와서 신어야지.'
'배는 고프지만, 수영장 다녀와서 밥을 먹어야지.'
수영의, 수영에 의한, 수영을 위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의 기준이 '수영'이다. 예쁜 옷도, 가방도 필요 없은 지 오래되었다. 스스로 필요한지 묻지도 않는 단계가 되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주 7일 수영을 가니 수영복이 자주 닳고 삭았다. 수영복이 허옇게 일어나기도 하고, 비치기도 한다. 오래 입어야 3~4개월 입는다.
그동안은 근처 아레나 매장에서 할인 행사 하는 수영복을 사서 입었다. 5만원 선의 수영복도 조금 부담스러워서, 2달 전에 인터넷에서 '싼 것'을 구매했다. 수영복 재질도 잘 모르다 보니 싼 것으로만 기준을 두고 샀는데, 역시 싼게 비지떡인가 보다. 두 달도 못 입고 늘어나고 허옇게 일어난 것들이 우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영복도 소모품이었구나.
두 겹 수영복이 좀 더 탄탄하고 오래간다는데? 폴리우레탄이 안 들어간 재질이 오래간다던데? 폴리에스터 100% 소재를 탄탄이 수영복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탄력성이 없어 입고 벗는 것부터가 운동이지만, 쫀쫀해서 오래간다고 한다.
아... 열심히 찾아보니 오래가는 재질은 다 비싸다. 흐엑. 몸뚱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 수영인 줄 알았는데, 수영도 돈이 좀 있어야 하는구나.
어쩌다 당근마켓에 들어갔다. 이사하면서 세탁기와 책상 판매 한 번 해봤을 뿐, 구매 이력은 없다. 수영복만 주구장창 보다 보니, 알아서 수영복만 보여준다.
나의 까다로운 수영복 조건을 정리해보니 이렇다:
사이즈 85
탄탄이 (또는 우레탄 소재 가능한 한 적은 것)
가능하면 두 겹
X자 스트랩
세미컷 또는 하이컷
가능한 새것이면 좋겠지만, 입수 3회 미만
수영복 사는데 이렇게 옵션이 많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전문가가 되었나 싶다.
앗! 이거 완전 마음에 드는데? 입수 1회? 가격도 마음에 든다. 근데 진짜 입수 1회일까? 입수 다수하고서 사기 아닐까 싶었지만, 용기를 내서 반값택배비 포함 2만 9천원에 구매했다. (반값택배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GS ***점에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카톡 메시지를 받고 단숨에 달려갔다. 택배를 수령해 나오자마자 길거리에 앉아서 택배를 뜯었다.
'이거 정말 사기 아니겠지?'
와아... 정말 입수 1회였나 보다. 짱짱하고 새것 같다. 두 겹에 우레탄 소재가 거의 안 들어가서 입고 벗을 때마다 인상을 쓰며 "아고고고고"를 외치고는 있지만, 정말 짱짱하다. 엉덩이천이 생각보다는 야박해서, 수영장 들어가고 나올 때 후다닥 들어가야 하지만... 꽤 마음에 든다.
신상 수영복 개시하던 날이다. 두근두근.
"수영복 바뀌셨네요~"
같은 시간에 자유수영을 한 지 1년이 된 분과 목례만 하는 정도였는데, 신상 수영복을 알아봐 주셨다.
당근에서 산 수영복. 새것같이 보이지만 중고 수영복을 신상 개시한 날. 누군가 알아봐 주니 나름 명품을 걸친 것 같다. 자유형도 더 잘나가는 것 같고, 배영도 더 우아한 것 같다.
모든 물욕이 사라졌구나 생각했는데, 또 어느덧 다른 방향으로 물욕이 생겼나 보다. 아니, 수영복은 수영을 하기 위한 필수품이니 물욕이 아니라 생필품 구매라고 해야 할까.
어찌되었든 수영이 또 한번 즐거워졌다. '신상' 당근 수영복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