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태기를 날린 한마디

칭찬의 나비효과

by 맛있는 하루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난다. 에어컨 바람조차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수영장에 가서 몸을 식히는 것은 좋은데, 수영하고 집에 걸어오다 보면 등줄기에 땀이 다시 흐른다. 뚜벅이의 슬픈 현실이다.


땀과의 전쟁을 생각하니 집밖을 나서기가 싫다. 오늘은 수영장 땡땡이를 칠까.


'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나에게도 수태기, 수영장 권태기가 왔나보다.'


주말에 사춘기 녀석과 복작거리다가 전쟁이라도 일으키면 안 되지. 일단, 수영장으로 가자.


역시, 여름인가보다. 주말 이른 시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사람도 많다. 보통 1레인 1인, 황제수영이 기본인 수영장인데 오늘은 1레인 2인, 만차다.


'역시, 오늘은 잠이나 더 잘 것을 그랬다. 오늘은 입수하지 말고, 씻기만 하고 갈까.'




그런데 수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어머. 이쪽으로 와봐요. 나 일주일동안 자기를 엄청 기다렸잖아."


사우나에서 인사만, 정확히는 목례만 하던 분이 한쪽 레인에서 나를 엄청 반기신다.


"지난 주에 탕 안에서 다들 자기 얘기를 하더라고. 배영을 엄~~~~청 예쁘게 한다고. 근데 내가 자기 배영을 한 번도 못 봤잖아. 나 너무 궁금해서 일주일 내내 기다렸어. 나 이제 수영 다 해서 나갈 건데 자기 배영 한 번 보고 나가게 얼른 해봐요. 그리고.. 자기 이름이 뭐예요?"


"제 이름은 OOO 이에요."


"OO씨, OO씨~~. 나는 OOO. 내가 기억력이 나빠서 이름을 자꾸 불러줘야 기억을 하거든. OO씨, OO씨, 얼른 배영해요. 얼른~~!"


매일같이 수영장에 다닌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통성명하고 수영을 했다.


왼쪽 어깨에는 부끄러움, 오른쪽에는 뿌듯함을 장착하고, 물 위에 누워 반투명 유리천장 위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배영을 했다.


팔을 곧게 뻗고. 귀를 스치고. 처음 배영을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배영 교과서 자세'라고, 강사님이 수업 중에 시범을 자주 보이셨는데... 그때는 몰랐다. 그 자세가 나의 어깨뽕을 날리게 할 줄은.


50m를 돌고 레인 끝에서 다시 인사를 나눴다.


"어머어머, 진짜 배영을 예쁘고, 힘 안 들이고 너~~무 잘한다. 대체 어디서 배운 거예요? 언제 배웠어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다다다다 물어보시는 OO언니. 나보다 최소 열 살은 넘게 많은 듯 하지만, 칭찬을 건넨 그 순간, 그분은 내게 언니가 되었다.


언니가 "배영 좀 해봐요." 말을 건네는 순간, 수태기가 언제 왔냐는 듯 갑자기 사라졌다.




홀로하기 딱 좋은 운동이 수영이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누가 나에게 말을 시키지 못한다. 혼자가 좋지만 가끔은 외로움이 살짝 올까말까한다. 그럴 때 누군가와 한두 마디 (너무 길면 또 부담스럽고 ^^;;) 나눌 수 있으면 좋다. 그것이 수영에 관한 칭찬이면 더욱더 좋고.


수영장에 가기 싫었던 날, 누군가 말을 걸고, 배영을 해보라고 하고, 폭풍 칭찬을 하고. 또 잊고 있었던 나의 이름을 너무 오랜만에 물어보셨다.


분명 당혹스러웠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총총총. 총총총. 집에 들어가자마자 외쳤다.


"남편아~~!!! 나와봐라. 내가 오늘 수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따뜻한 한마디 말 덕분에, 잠깐 올 뻔했던 수태기를 날려버렸다.


수영장 다녀오자마자, 내일의 수영을 준비한다. 수영복을 널어 말리고, 수영복 가방을 정비한다. 휴대용 샴푸통에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빵빵하게 채워넣는다.


귀찮을 법한 이 모든 준비가 설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내일 또 누군가와 주고받을 작은 인사와 미소 때문일 것이다. 내일의 수영을 위해, 오늘 스트레칭을 한다.



#오수완 #수태기 #수태기극복 #칭찬의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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