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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기 Sep 05. 2024

01. 입비혼주의자의 고해성사

내가 비혼을 결심했던 이유는

그래, 고백한다.

31살이 된 나는 이제 결혼이 하고 싶다.


어릴 적 내가 결심했던 비혼(非魂)은

평생을 홀로 살겠다는 종신 서약은 아니었나 보다.


변절자가 된 심정으로 변명해 보자면,

사실 나의 비혼 결심은 평생에 대한 다짐이 맞았다.


쌍도남의 결정체인 우리 아빠,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자식에게 자아를 투영했던 우리 엄마 밑에서 자라며

꼬꼬마 중학생이던 15살 때부터

10여 년 이상 다짐해 왔던 결심은 맞단 말이다.

(변명처럼 들리긴 하겠지만)


결혼의 결 자도 생각할 필요가 없던,

중학교 2학년 15살의 내가

'나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야'라는 다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기까지는

꽤나 많은 경험이 있기야 했다.


노래방에서 50만 원을 긁고 온 아빠의 영수증을 보며

한숨짓던 엄마의 모습과.


'너희가 어른이 되면 엄마가 말해주겠지만,

사실 너희 아빠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하던 이모.


늘 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며

'아빠는 엄마를 사랑할까? 진짜 사랑해서 결혼한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에 밤잠을 설치던 나.


엄마는 내가 15살이던 어느 날,

시댁의 폭언으로 녹다운이 되어 버린 그날,


깊은 밤 지친 표정으로 내 옆에 누워

나지막이 고백하기 시작했다.


- 사실 아빠는 바람을 피웠던 적이 있어.


-... 누구랑?... 언제?


- 몰라. 엄마도 모르는 사람이야.

다만 한 번은 아니고.

엄마가 아는 건 두 번,

모르는 건 그 이상일 거야.


-... 어떻게 알게 됐어?


- 옛날에는 인터넷 채팅이란 게 있었거든.


- 아빠가 채팅으로 여자를 만났던 거야?


- 응.

둘 다 유부녀였어.

엄마가 그 여자 아파트까지 찾아간 적도 있어.


- 머리채라도 잡았어?


-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아파트 단지 앞 현관에서 그 여자가 나오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왔어.


그때의 나는 엄마가 참 멍청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 아니 갔으면 머리채라도 잡았어야지.

그냥 미친년처럼 지랄 한 번 해줬어야지.

왜 그냥 돌아왔어?

왜 암 말도 못 했어?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던 나에게, 엄마는 그저 푸스스 웃으며.


- 그게 쉽지가 않더라.


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웃음이 참,

많은 것을 포기한 여자의 표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탈한 것 같기도 하고. 외면한 것 같기도 하고.


자식의 안녕과 본인의 안락한 삶을 위해

가정주부였던 엄마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15살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 여자들과 아빠에게 욕을 퍼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그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 00아. 너는 결혼 안 해도 된다.

근데 직업은 꼭 가져라.

여자도 직업이 있고 돈을 벌어야 해.

네 돈이 있으면 남자랑 안 살아도 된다.

너 혼자 즐기며 멋지게 살아라.


그 말은 15살의 나에게 스며들어

내 삶의 지침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게 내가 15살에 비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그리고 10여 년 간

그 다짐은 변하지 않았었다.


물론 15살의 내가

'난 절대 결혼 안 할래'라고 말하면, 엄마는

'그래 결혼하지 말아라.

너 혼자 재미나게 살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20살의 내가

'엄마, 난 결혼은 안 할래'라고 했을 때, 엄마는

'그래. 천천히 생각해 봐라.

근데 인생사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25살의 내가

'엄마. 나 결혼은 절대 안 할 거야.

내가 만약에 미쳐서 누구랑 결혼하겠다고 하면,

엄마가 말려줘야 돼?'라고 하자,


엄마는 나를 거실에 앉혀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00아.

너 정말 결혼 안 할 거니?'


나는 그 물음을 듣고 좀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엄마가 결혼하지 말라며.

돈 벌어서 혼자 잘 살라며.

왜 이제 와서 그래?'


그러자 엄마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리고 어색할 정도로 진지하게

나에게 말했다.


'00아.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결혼해도 행복할 수 있어.

너 연애도 안 하니?'


(몰랐는데, 이 즈음

연애는커녕

놀러 다니지도 않는 나를 보며,

엄마와 언니가 내 뒤에서

나에 대한 걱정 어린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


물론 나는 취업 준비에 열중하느라

놀 생각을 못했었던 거지만...)


아무튼 당시의 나는

나를 결혼혐오자로 만든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듣고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다.


'엄마, 엄마가 보여준 결혼생활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내가 엄마처럼 결혼생활했으면 좋겠어?

아빠처럼 성매매하고 바람피우는 놈 만나서

엄마처럼 고생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지..'


'그럼 결혼하라는 그따위 소리 꺼내지도 마!'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엄마를 몰아세웠고,

엄마는 그저 착잡한 표정으로

연신 그게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렇지 않아..

세상에 아빠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그리고 아빠도 어떤 면에서는 좋은 사람이야.

성실하고, 따박따박 돈 벌어주고..'


그때의 나는 엄마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의 나에게 남자란,

모두 아빠의 복제된 표상일 뿐이었다.


모두가 그 거지 같은 쌍도남의 기질을 타고나

여자를 종년처럼 부려먹고,

여자와 겸상하지 않으며,

여자는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고 하는

그런 원망스러운 표상 말이다.


그랬던 나는 20대의 어느 여름날,

돌이켜보면 내 삶을 달라지게 했던

그런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제주의 겨울 바다. 새파란 하늘과 흰색 풍력발전소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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