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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기 Sep 05. 2024

02. 입비혼주의자는 그만 외로워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20대의 어느 날. 무척이나 더웠던 7월.

그 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만으로 12년, 햇수로 13년 차 키우던

우리 집 강아지, 내 동생,

사랑스러운 막둥이 콩이(가칭)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때 나는 한창 취업 준비 중이었고,

하반기에는 중요한 시험이 여럿 예정되어 있었다.

슬픔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바쁜 시기였다.


당시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콩이는 나이가 많은 노견이었고,

단백소실성 장병증(PLE, Protein Losing Enteropathy)으로

이미 2년째 투병 중이었다.


단백소실성 장병증은 장에서 단백질 흡수가 안 되어

마치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배에 물이 차고

심하면 저혈당 쇼크가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이건 완치가 없는 병이어서

그저 꾸준히 관리하며 죽을 때까지 돌봐주는 수밖에 없었는데,

2년째 투병 중이던 콩이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던 차였다.


마침 그때는 내가 취업 준비 중이라

가족 중에서 가장 집에 오래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해 1월부터 6월까지,

나는 집에서 계속 공부를 하며

콩이를 돌보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 7월.

끝없는 취업 공부에 지친 내가

집에서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고

도서관으로 공부를 다니기 시작한 달.


그 달에 콩이에게는

첫 번째 저혈당 쇼크가 찾아왔고,

우리 가족 모두 콩이의 죽음을 예견하게 되었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하루종일 콩이를 케어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한 시기부터

콩이의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했고,

취업을 해야 했고,

콩이를 돌보느라 이 시기를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저혈당 쇼크 때

콩이는 엄마 옆구리 곁에 누워서

자다 떠났다.


우리는 짧은 애도를 하기로 했다.

새벽에 떠난 콩이의 곁을 뜬눈으로 지키며

콩이와 마음속으로 인사하고,

아침 첫 기차를 타고 엄마의 고향으로 내려갔다.


외할머니 집 앞에는 조그마한 밭뙤기가 하나 있다.

우리는 콩이를 거기에 묻었다.


슬픈 이별이었던 것 같다.

쨍한 여름날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벌초하지 않아 무성한 풀떼기 사이의 흙밭.

콩이는 포대기에 싸여 외할머니 땅에 누웠다.


얼굴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더운 여름 콩이의 몸에서는 이미 부패한 냄새가 나기 시작해서

포대기를 열지 말라고 엄마가 말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콩이를 감싼 포대기에 코를 묻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내 동생의 마지막 냄새.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이

영영 이별이니까.


떠올리면 멍해지는 기억이다.


그렇게 콩이를 보낸 뒤, 그 해 하반기에는

슬픔에 잠길 겨를도 없이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


시험 칠 때, 면접 볼 때,

떨릴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콩이가 언니 합격하라고 응원해 줄 거야.

착하고 귀여운 내 동생.

하늘나라에서 언니 잘 되라고 응원하고 있을 거야.

내가 우리 콩이 언닌데 뭘 못하겠어.'


그리고 정말로 콩이 덕분인지,

나는 다음 해 취업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정신없는 해였다.

첫 취업, 첫 사회생활, 첫 자취.

집에서 먼 직장에 다니기 위해 구한 원룸에서

나는 밤새 울며 뒤척였다.


처음이니 일은 당연히 힘들었고,

변변한 알바 한 번 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첫 사회생활은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늘 눈치 보고 마음 졸이는 생활이 계속됐다.

다 그만두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원룸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잠들기 두려워 작은 등을 켜놓았지만

극심한 외로움과 공포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너무나 사무치게 느꼈던 것 같다.

'외롭다'라고.


12년을 함께 했던, 늘 내 옆구리에 붙어

따끈따끈 온기를 전달해 주던 콩이도 없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있으니

슬금슬금 파고들어 안길 엄마도 없다.


무엇보다 마음 한 구석이 허했다.

본가에 돌아가면 엄마는 볼 수 있지만,

쫄랑쫄랑 반겨줄 콩이는 없으니.


모터 달린 듯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온몸을 던져 품에 안기던 콩이를

이제는 어딜 가도 볼 수 없다는 느낌에,


멍하니 일어나 눈물을 닦았던 날이 많았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건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다.

목구멍이 콱 막히고,

가슴이 뻥 뚫린 것 같고,

뒷골이 뻣뻣해지고 눈이 뜨겁다.


온몸에서 내가 혼자라는 감각이 왔다.


어린 시절 엄한 아빠를 무서워하고

정신 나간 엄마를 걱정했던 내게

애착 문제가 있는 건 진작 알았지만,

그게 온몸으로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콩이가 방패가 되어 주고 있었나 보다.

항상 옆구리에 따뜻하게 기대어 눕고,

내 입을 핥아주고, 팔에 얼굴을 비비고.


콩이가 있으면 난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외로울 것도, 위축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콩이가 없다.

이 세상에 콩이가 없다.


나에겐 따뜻함이 너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내가 연애를 결심한 이유다.


콩이의 무덤. 반년 뒤에 가 보니 파란 꽃이 피어 있었다. 이름을 찾아보니 '개불알꽃'. 언니와 함께 크게 웃었다. 분명 콩이의 영혼일 거라며(콩이는 여자애지만, 아무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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