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우리나라 인구 24만 명이 치료받는 질병. 유병률 2%.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 질병.
이게 무슨 병인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제목에 나와있으니 당신은 아마 바로 맞출 것이다.
이 병은 바로 공황장애. 공황발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병을 이르는 명칭이다.
공황발작(panic attack)은 말 그대로 공황 증상이 발작처럼 찾아드는 걸 말한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안 쉬어지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함께 느껴진다. 발작은 수 초 혹은 수 분 동안 이어지며 절정에 달하고, 이내 사그라든다.
공황발작은 꽤나 공포스럽고 불쾌한 경험이라, 이 발작을 한 번 경험한 사람은 다음번에도 이런 증상이 찾아올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하나 모순적이게도 발작을 두려워하면 두려워할수록 발작이 재발할 가능성은 증가한다. 왜냐하면 그 두려워하는 느낌 자체가 몸을 긴장하게 하고, 정신을 예민하게 곤두세우며, 신체의 작은 신호를 '죽을 것 같은 위협'으로 왜곡해서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인간의 심장은 원래 일정한 속도로 뛴다. 그러나 큰 소리를 듣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마주치면 우리는 깜짝 놀라며,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은 이 상황을 이렇게 해석한다. '아, 내가 놀라서 가슴이 이렇게 두근거리는구나. 내가 뭐 때문에 놀랐지? 아, 짐이 떨어져서 큰 소리가 났구나. 별 일 아니네. 괜찮아.' 그러면 마음이 점점 진정되고, 그에 맞게 신체 반응도 느려진다. 심장은 곧 정상적인 속도로 뛰게 된다.
그러나 공황장애 환자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심장이 빨리 뛰면, 그걸 이렇게 해석한다. '어? 어라? 내 심장이 왜 갑자기 빨리 뛰지? 어? 뭐야, 무서워. 내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다니, 나 심각한 병에 걸린 거 아니야? 어, 어, 왜 계속 뛰지? 그만 진정해, 진정하란 말이야! 이렇게 빨리 뛰면 심장이 곧 터져버릴지도 몰라. 심장이 터지면 어떡하지? 나는 곧 죽어버릴지도 몰라!'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으로 인해 환자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공포를 느끼니 심장은 더 빨리 뛰고, 환자는 더더욱 패닉에 빠진다. '심장이 더 빨리 뛰고 있어. 더더 빨라진다. 더더더더!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내가 죽는다고? 어떡해! 진정해! 심장이 터져 버릴 거야! 나 이제 죽나 봐! 어떡하지, 어떡하지! 살려 줘!'
심장은 계속해서 빨리 뛰고, 더 빨리 뛴다! 환자는 미칠 듯한 심정으로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뛴 것은 심장마비가 오는 신호가 아니라, 단지 큰 소리에 놀라서였기 때문이다. 환자의 신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환자는 단지 놀란 것 때문에 더 놀라고 더욱더 놀라고를 반복한 것이다. 마치 자기가 건든 무언가에 깜짝 놀라 펄쩍 뛰는 토끼, 고양이, 강아지처럼 말이다.
우리 몸에는 교감 신경이라는 게 있는데, 이 교감 신경은 인간이 위급한 상황을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보통 인간이 공포 감정을 느끼면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며 신체를 도피 태세로 빠르게 활성화시킨다. 맹수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말이다.
맹수를 마주친 초식동물은 달려야 한다. 위험하니까! 위협 신호를 인지한 몸이 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한다. 시작 총성이 울리기 전의 육상 선수처럼 몸을 긴장시키고, 심장을 빠르게 펌프질 하여 팔다리에 산소를 공급한다. 호흡 가빠지고, 땀이 나며, 침이 마른다. 몸은 서서히 데워지며 달릴 태세가 된다.
그러나 이 교감 신경은 영원히 활성화되어 있을 수만은 없다. 몸도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라? 도망칠 준비를 다 마쳤는데 왜 도망치지 않지? 실제 위협이 없었나? 지금 위험하지 않은 상황인가?'
교감 신경을 계속해서 활성화시키는 건 에너지의 낭비다.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생존이며, 위험 상황에 도피하는 것도 생존 방법이지만 위험이 없어졌을 때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도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위험이 사라졌다. 에너지를 비축하자!라고 몸이 인식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부교감신경은 교감신경의 반대 역할을 하는 신경계로,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여 에너지를 저장해 두는 기능을 한다. 심장을 느리게 뛰게 하고, 땀 분비를 감소시키며, 호흡을 안정화시킨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미친 듯이 질주하던 심장은 이내 점점 진정하기 시작한다. 빠르게 뛰던 속도가 차차 느려지고, 느려진다. 데워졌던 몸은 서서히 식고, 호흡이 차분해지며, 머리가 맑아진다. 공황장애 환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나갔다.'
공황발작은 이렇게 시작되고, 절정에 이르렀다가, 사라진다.
자성예언(self-fullfiling prophecy)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예언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지만, 이 자성예언은 독특하게도 예언을 하는 것 자체가 그 예언을 실제로 실현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즉, 이름처럼 '자기 스스로 충족하는 예언'인 것이다.
공황장애 환자는 보통 이런 자성예언을 지닌다. '이 공황발작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어', '내가 대비하지 못하는 때에 갑자기 공황발작이 찾아올 거야'.
이런 생각을 계속 갖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생각은 생각만으로 몸의 긴장을 일으킨다. 긴장한 몸은 작은 위험 신호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예민한 몸의 반응을 환자는 발작으로 착각한다. 착각은 다시금 발작을 불러오고, 또 불러온다.
발작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이 긴장하면, 긴장한 몸은 작은 신호에도 펄쩍 뛰듯 놀라고 또 발작한다. 즉,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자성예언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발작이 진행될 경우, 당신이 병원에 가면 공황장애로 진단받을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진단을 위해 활용하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서는 공황장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A. 예기치 않은 공황발작이 반복된다. 몇 분 내에 두려움이나 불쾌감이 급등하여 절정에 달하는 동안에 다음 증상들 중 네 가지 이상이 나타난다.
주의 : 두려움이나 불쾌감의 급등은 차분한 상태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걱정하는 상태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1.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2. 땀이 많이 난다.
3. 몸이 심하게 떨린다.
4. 숨이 가빠지고 숨을 못 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5.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6. 가슴에 통증이 있거나 압박감이 든다.
7. 구토증이 나고 배 속이 불편하다.
8. 어지럽거나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9. 오한이 오거나 몸에서 열이 오른다.
10. 마비된 것 같거나 따끔거리는 느낌이 드는 등 지각에 이상이 있다.
11. 비현실감이나 이인증(자신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이 나타난다.
12. 통제력을 잃어버리거나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13. 죽어 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주의 : 귀울림, 목의 통증, 두통, 통제할 수 없는 비명, 또는 울음 등의 증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들을 네 가지 진단기준의 한 가지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B. 최소한 한 번 이상의 공황발작 후 한 달 이상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또는 둘 다 발생한다.
1. 공황발작과 결과(예: 통제력 상실, 심장마비, 정신 이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걱정하고 염려한다.
2. 공황발작과 관련하여 심각한 부적응적인 행동의 변화가 있다(예 : 공황발작을 피하기 위하여 운동이나 친숙하지 않은 상황을 회피하는 행동).
길고 복잡한 문장의 나열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 공황발작을 경험했는가? (공황발작 증상은 1~13번을 살펴보라)
B. 공황발작을 경험한 이후 다시 공황발작이 올까 봐 계속 걱정하는가? 또는 공황발작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을 피하는가?
한번 살펴보고 자가진단해 보라.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만약 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리고 그 경험으로 인해 계속 두렵다면, 빠른 시일 내에 가까운 정신과를 방문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공황발작을 여러 차례 경험한 사람이지만, 현재는 공황장애의 진단기준을 모두 충족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공황발작이 다시 올까 걱정하며 전전긍긍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진단기준 B 미충족) 그러나 과거에는 한때 그랬고, 이 증상으로 인해 정신과 병원에 가서 불안약을 처방받아먹은 적이 있다.
불안약을 먹으면 확실히 불안이 가라앉는다. 자이로드롭 꼭대기에 매달려서 언제 떨어질지 몰라 무서워 달달 떠는 느낌이 서서히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러면 또 일상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
또 공황발작이 찾아올까 두려운 것도 별로 없다. 발작이 와도 수 초에서 수 분 이내로 지속되다 사라지는 걸 나는 이제 알기 때문이다. '아, 나한테 또 발작이 찾아왔구나. 괜찮아, 이거 조금 있으면 사라져.' 하는 마음으로 깊게 숨을 들이쉬면 된다. 심호흡은 진정에 꽤나 도움이 된다.
또 마음이 불안정해지거나 발작이 시작될락 말락 하는 느낌이 올 때면 바로 약을 먹으면 된다. 책상 위에는 항상 약통이 있다. 밖에 나갈 때는, 예전엔 약을 가지고 다녔으나 지금은 가지고 다니진 않는다. 약이 없어도 생각과 심호흡으로 얼마간 발작에 대처하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발작에 대처하는 법을 이제 알고 있으니 나는, 더 이상 발작을 걱정하지 않는다.
설마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 몰랐지만, 이 경험으로 인해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최근에 걷다가 어지러워서 쓰러질 뻔했어.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기가 어렵더라. 눈앞이 핑 돌던데. 근데 병원 가보니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대."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너 그거 공황 증상일 수도 있어. 병원 한 번 가 봐."라고 대답해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그 친구는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먹었다고 했다. 발작이 많이 반복되진 않았으니 엄청나게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물의 도움으로 상태가 호전되었다니 참 다행이라 하겠다. 그때, 내 경험으로 인해 친구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경험을 해봤을 수 있다. 과호흡이 오거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거나, 몸이 떨리고 뜨거워지거나, 어지러운 느낌 말이다.
그런 경험을 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 느낌은 언제 느껴졌나?
내가 처음 공황발작을 맞이했을 때는 이랬다. 어느 날 저녁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마비된 것 같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 상태로 몇 분 동안 있다가 나는 겨우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바닥에 한참을 가만히 웅크려 있은 후에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취준 모의면접을 봤는데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수가 나왔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취업에 실패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고, 큰일 났다는 생각과 함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 다음 증상이 나타났다.
두 번째 발작이 일어났을 때는 밤이었다. 그때도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내 절망적인 상황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도저히 없다는 생각이 든 찰나였다.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과 함께 호흡이 쥐어짜이듯 가빠졌다.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고, 어지러워서 벽에 기대어 계속 눈물을 흘렸다.
수 초 동안 숨을 못 쉬고 눈물만 흘리다가, 겨우 발작이 지나갔다. 막혔던 숨이 가쁘게 나오며 울음이 소리로 나왔다. 온몸에 피가 다시 통하는 건지, 손끝이 저리고 뜨거웠다.
세 번째 발작도 역시나 밤, 침대였다. 어떤 기억을 떠올리다가, 내 실수를 돌이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갑자기 조이는 느낌이 들면서 확 불안해졌다. 온몸이 침대에 깊게 가라앉는 것 같고, 가슴 위에 무거운 추가 얹혀 나를 침대로 찍어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이 가빠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났다.
네 번째 발작 때는, 밤에 바스락거리는 소리 때문에 갑자기 끔찍하게 불안해졌다. 누군가 잡아먹을 같은 불안에 가슴이 확 조이며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리는 어쩌면 벌레일 수도, 바람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런 느낌이 들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호흡했다. 깊게. 아주 깊게. 심호흡을 몇 번 반복하자 불안한 느낌이 사라졌다.
이때부터는 그래도 내가 이 증상을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 후에는 이 방법으로 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공황 증상을 미약하게만 경험했을 수도 있고, 한두 번 정도 불안하기만 했을 수도 있다. 몇 번의 심각한 발작을 겪었을 수도 있고, 이미 그것 때문에 약을 먹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어느 지점에 있든, 얼마나 심각하든 간에,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우리 몸의 통제자이며 우리의 불안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내가 나의 불안을 다루며 살아가듯, 당신도 당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착각하는 그 불안을 언젠가는 다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