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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억울한데요.

#민폐 학부모?

오전부터 출장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드륵드륵 진동이 온다. 학교 알림장이다. 보통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알림장이 올라오는데 행정실에서 보낸 부모교육같은 알림인가. 그러니 큰 녀석과 작은 녀석 것이 쌍으로 연달아 알람이 오겠지. 당연히 여력이 없어서 열어보지 않았는데,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울리는 것이 수상쩍어 열어본다. 9.4일 아이를 학교를 보낼 것인지, 집에서 현장학습을 지 선택하라는 알람이었다. 그런데 왜 쉬는지 내용이 없다. 개교기념일인가? 갑자기 공휴일 지정이 되었나? 구글 달력을 찾아보지만 연유를 모르겠다. 평소 아이 친구 엄마들과도 특별히 소통이 없어 뜬금없이 누군가에게 연락하여 묻기도 애매하다. 결국 선택지가 있으니 등교로 신청해 본다. 지금 점검 실적에 쫓기는데 연가가 웬 말이며, 갈 데도 없는데 현장학습이 웬 말이야. 출장업무가 대강 마무리되고, 영 찝찝하니 학교로 전화를 해봤다. 뉴스에 내일 임시 공휴일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난 거 아냐? 무식하게 그것도 모른다고 하면 어쩌냐. 잔뜩 쫀 채로 행정실로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6학년 아니 5학년(몇 반이더라) ooo엄마입니다. 선생님. 알람 받고선 전화드려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호호호. 혹시 4일 날은 왜 쉬는 걸까요?

아.... 어머니.... 저... 교무실로 돌려드릴게요.


행정실 선생님이 서둘러 전화를 돌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5학년 ooo엄마인데요. 알람에 4일 학교 올지 안 올지 선택하라는데요. 혹시 4일에 왜 쉬는 걸까요? 개교기념일일까요?

아, 어머니 그게 아니고요....


선생님 말씀은 '진상'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젊은 서이초 선생님의 추도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교육 멈춤의 날이 그날 진행될 예정이고, 따라서 정규수업은 없으나 부득이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여야 하니 그 날 학교에 올 인원의 수요 조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 아.. 끄덕임 끝에 전화를 끊을 수밖에.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동료가 민원에 죽음을 선택했고, 나도 그런 민원에 때때로 시달리고, 어쩌면 나도 그런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감.


곪을 대로 곪은 것이 터졌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진상 학부모의 민원의 문제성과 교권의 추락, 선생님께 하지 말아야 행동들과 진상부모판별법이 여기저기 올라왔다.


본디도 소심한 사람이다. 학교 선생님께 e-알림이를 올리는 것도 부담스럽거니와,  대면상담은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 시절 전화상담 때에도 등에 땀도 나고 얼굴고 빨개졌더랬다. 당연히 선생님께 민원제기는 해본 적이 없다.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아이를 맡아주는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혹시나 나 때문에 우리 아이를 나쁘게 볼까 싶은 두려움. 아마 대부분의 학부모가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저기 올라오는 진상 학부모에 대한 얘기에 내가 진상은 아니었는지 돌이켜본다. 준비물을 제때 못 챙긴적이 있는데 그건 진상부모 아닌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늦는다 알림톡에 올리는 건 하는 게 맞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긴 한데, 기분이 그렇다. 그저 학부모라는 이유만으 예비 진상이 된 것만 같다.

'맘충'이라는 말이 한참 이슈일 무렵, 혹시나 그 그룹에 속하게 될까 봐 맘을 졸이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맘충이 사례를 보고 나는 아니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던 시절. 정말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범하게 기억에서 지워버릴 텐데. 나머지 소심이 맘들만 맘을 졸이는 거 같아 억울하고 또 억울했던 기억.



오늘 저녁 갑자기 만들어진 반 톡방에 초대되었다. 드디어 학교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기뻐하던 찰나, 오는 4일 휴교와 관련된 공지가 올라왔다. 각반 선생님이 반 임원 학부모에게 개별적으로 안내하여 전달된 내용인즉슨 4일 수업은 학부모회에서 봉사자를 자원받아 운영될 것이며, 다행히도 그날 등교 인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봉사가 가능한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꿀을 삼킨 벙어리가 되었다. 등교를 시키는 많지 않은  하나이니, 당연히 자원봉사는 할 수 없다.  도움은 주지 못하며 품은 들게 하는 민폐학부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뇌에 빠져 버렸다.


지금이라도 취소를 할 수 있나? 그냥 아들 둘이 집에 두고 배민에 점심 배달을 해줘야 하나.


나름 예의 있는 학부모였던 것 같은데.  아무리 뒤져도 국회의원 인맥은 없는 평범한 소시민 학부모는 어쩌다 민폐가 된 듯한 이 상황이 좀 억울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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