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로 들어서자, 카운터에서 “예약을 하셨어요?” 물어보고 단골 디자이너 쪽으로 가시라고 손짓을 한다. 미용실에서는 커트, 펌 하면 3시간 지나는데, 손님들은 시간이 길어서 오래 앉아 있기 싫으면 빨리 나가고 싶어 한다. 새로운 장소에서의 제삼자로 있고 싶어 하는 나는 그 시간을 즐긴다. 나의 경험이 아닌 미용 디자이너들의 삶이라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어서 더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본 와이프는 이해가 되지 않아 목을 여러 번 휘젓는다. 다른 고객들과 상담을 할 때 원하는 헤어 과정을 이야기하지만, 나와 이야기할 때에는 남자 친구와 사이가 안 좋다는 이야기로 그 긴 시간이 짧게 지나간다. 자리에 앉으면 디자이너 분에게 내 머리는 어떻게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관심이 덜 가는 부분이고 성격 자체가 수동적이라 전문가가 확인해 주는 게 더 편안하다. 실제로 펌과 커트가 너무 이상한 결과로 빠지지 않는다면, 대화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돈의 지불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진심이 느껴지면 내 최종 선택이 끝난다. 대기업 브랜드로 매장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고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내게 더 다가왔다.
이제는 5년 차 정도로 서로를 잘 아는 만큼 많은 대화를 한다. 디자이너님의 나이가 32인데 누가 봐도 순수한 사람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순수라는 성격은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모습인데, 난 가족의 큰 오빠처럼 다가가서 내 일 마냥 이야기해준다. “남자 친구가 좋은데요. 같이 술 먹게 되면 제 혀가 짧아지니 혼자 두기 어려워해요. 그리고 표현 자체도 강해서 다정하지 않고요.”라는 말로 답답함을 표현한다. 대화 속에 그 디자이너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남자 친구의 마음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다. 그 둘의 대화가 잘 이루어져야 하는데 어떤 말로 서로를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 라면서 “내가 생각하기에는.”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화 속에서는 이기심이 표출되는 게 당연하고 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러나 그건 연인을 이해 못 하는 나만의 연애 방식으로 끝맺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와 이십 년 넘게 달리 자랐는데, 똑같은 부분이 얼마나 있을까? 서로가 맞지 않는 부분은 상대를 이해하면서 같이 꾸려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상황에 내가 없지만, 연애를 하고 있는 상대의 마음은 진심으로 느껴야 가까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 속에서는 공감이라는 말이 항상 중요하다. 나 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그 모습이.
대화 이후에 계속 싸우게 되다가 헤어졌다고 이야기를 전달받았을 때 “디자이너 짝 아니야. 잊어. 새 출발이야.”라고 전했다.
미용실이 원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온라인을 사용해서 오프라인 고객을 끌고 오는 게 가장 크다. 개인 톡으로 예약 물어보던 시절에서 네이버를 통해 묻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네이버 예약으로 매달 원하는 조건이 달성되면 네이버 화면에 보이는 순서가 달라지기도 한다. 미용실 입장에서는 오프라인 고객을 잘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내부에서는 매달 경쟁시키는 구조이다. 순서가 높이 있으면 처음 손님들에게 유리해져서 더 많은 고객을 받기도 한다. 요번 달은 포토리뷰가 많아야 하고, 다음 달은 첫 손님들이 많은 비율로, 미용 제품을 많이 파는 점수로, 디자이너끼리 경쟁시키는 조건이 많지만 미용실도 다른 경쟁 업체를 이기기 위해서는 새롭게 다가가는 게 필요했다. 미용실 가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담당 디자이너님도 나의 직업이 없어지면 이 미용 분야로 오라고 꼬시기도 한다. “그럼 샴푸랑 서비스 연습 많이 해야겠네. 거기서부터 시작이야. 나 할 수 있어.”의 다짐으로 웃음을 전달했다.
뒤에서 펌을 도와주는 분이 디자이너 분인지 알고 순위가 많이 내려갔는데, 요번 달은 어떤 조건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원장님이 바뀌기 전에는 포토 리뷰 건수가 많으면 1등이 되는 조건이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조건으로 경쟁을 시키길래 “요번 달은 뭐 에요?” 당당하게 물었다. 이번 조건은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뒤의 그분은 원장님이다. 아뿔싸!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에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디자이너들 너무 고생하는 거 같다. 매달 바뀌는 조건에 자기 성격도 바꾸기도 어렵고. 새 디자이너에게도 1등의 조건을 줘야 하는 건 알지만, 새로운 손님을 많이 받는 조건으로 달았을 때 디자이너 지인들을 데려오는 경우도 많았다. 지인 많으면 다 인가요?”라고 하면서 다시 원장님과 대화를 이어간다. “담당 디자이너가 순위가 떨어지면 힘들다는 거 충분히 알죠. 저도 본사 미용실에서 순위를 치고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라 쉽지 않습니다.” 또 그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대화 속에서 도대체 몇 번을 이해하고 사는 거야. 이해하다가 다 끝나겠어.’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참 끝도 없이 지나갔다. 그 후 담당 디자이너 분이 오셔서 “서로 끝이 보이지 않는 대화를 하는 모습에 참 많이 웃었어요. 그런데 무슨 대화를 그리 오래 하셨냐고?” 해서 “미용실의 매달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물론 내 담당 디자이너가 1등으로 되어 있으면 좋은데.” 하면서 각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친해지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나 같은 고객은 없겠지만, 이런 대화를 좋아하는 나는 또 미용실 갈 시간이 기다려진다. 어떤 대화가 날 또 궁금하게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