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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어리 Mar 20. 2024

지금까지 이런 독서모임은 없었다.

여커치독 #2

독서모임에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 지정도서모임과 자유도서모임. 지정도서 모임은 말 그대로 한 권의 책을 지정해서 모임원들이 미리 읽고 모여 토론을 하는 방식이다. 자유도서모임은 보통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들고 모여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이후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소개하는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재미있지만 조금씩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우선 여커치독은 원래 한 달에 한번 지정도서모임으로 운영되었다. 한 달에 한 권밖에 안 읽다 보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다. 책을 운영진이 고르다 보니 운영진의 취향이 반영되어 책이 다양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나는 또 다른 독서모임에도 다니고 있는데 그 모임은 자유도서모임으로 운영된다. 각자의 취향이 모두 다르다 보니 매번 다양한 책이 모이는 게 흥미로웠다. 단, 정해진 시간 동안 여러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깊이가 아쉬울 때가 있었다.


두 방식의 장점을 모두 다 갖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두 방식을 합쳤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온 대사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수원왕갈비통닭'처럼 '이것은 지정도서모임인가 자유도서모임인가.'싶은 주제도서모임을 만들었다. 주제도서모임은 이렇게 운영된다. 우선 운영진이 하나의 주제를 던진다. 예를 들면 소비, 사랑 등이 있다. 모임원들은 각자 주제에 맞는 책을 선정한다. 선정한 책을 미리 읽고 모임에서 책을 소개하며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첫 주제도서 모임의 주제는 'n인가구 :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이었다. 당시 내가 그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 생각인지 궁금해서 질문을 던진 셈이다. 그날 모임엔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결혼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의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부터, 동생이랑 같이 살아갈 사람, 친구와 같이 살아갈 사람, 혼자 살아갈 사람, 반려동물과 함께 살 사람까지... 심지어 이 부분은 강아지와 함께 살 사람, 고양이와 함께 살 사람도 나뉘었다.


지난 2월에는 ‘2024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각자 자신의 2024년을 소개할 책을 가지고 모였다. 이번 주제는 책을 고르기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를 소개하고, 또 나의 새해 다짐을 담아야 했다.


처음에는 필사에 관한 책을 골랐다. 글을 좀 써보고도 싶었는데 필사를 하면 왠지 없던 필력도 생길 것 같았다. 필사 책을 읽으며 나도 매일매일 필사를 해야지 결심했다.


그다음에는 외국어 공부책을 고르려고 했다. 중국어를 한 달 반정도 공부하다가 그만둔 지 한 달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외국어 공부는 매일매일 해야 한다는데. 이제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고 매일 1시간씩 중국어 공부를 해야지 결심했다. 글도 매일매일 30분씩은 쓰자고 결심했고, 헬스장도 매일 가서 1시간은 운동하고 와야지 결심했다. 명색에 독서모임 운영진인데 책도 매일 30분씩은 읽어야지. 일기도 매일 쓰고 싶다. 영어 공부도 조금씩은 해야하는데...


2024년 결심은 하나씩 늘어나 내 결심을 모두 다 이루려면 하루에 꼭 필요한 시간이 20시간이 되었다. 하루에 4시간만 자면 됐는데 이걸 다 하고도 하루에 8시간은 자겠다는 결심도 했었다. 시간에 쫓기고도 하고 싶은걸 다 하지 못하는 날을 3일 정도 보냈다.


결국 책을 다시 골랐다. ‘하루에 딱 3개만 골라서 잘하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픽쓰리’를 들고 모임에 참석했다. 2024년에는 갓생까진 바라지 않으니 그럭저럭 지속가능한 삶을 살자고 결심했다.


나와 달리 제대로 갓생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멤버도 있었다. 미래의 내가 현재로 돌아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살겠다며 '퓨처셀프'라는 책을 가져왔다. 모임장인 지영도 비슷하게 현재에 집중해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으로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라는 책을 가져왔다.


또 다른 멤버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으며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책을 골랐다. ‘올해는 나 자신답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헤르만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을 고른 멤버도 있었다. ‘그동안 주의 깊게 보지 않은 주변을 잘 살펴봐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소설을 고른 멤버도 있었다. 비슷한 듯 다른 다양한 2024년 결심들이 모였다.


이 방식은 한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보다 조금 더 가볍게 그리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내 2024년 목표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또 운영진으로서 내가 고른 지정도서가 재미없진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는데 각자 책을 고르니 부담도 덜하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장점이 있는데... 책 한 권만 읽어도 여러 권을 읽은 것 같은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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