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1일, 설렘과 두려운 긴장감을 안고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학생이 아닌 교사의 신분으로 처음 학교에 간 날이었습니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M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로 부임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작은 꼬마들과 어떻게 보냈을까 싶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88년에는 5학년 담임교사로, 그다음 해에는 6학년 담임교사를 맡았다. 학생들과는 열세 살 차이였습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흘러 38년이란 인생을 교사로 살았습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수학을 잘한다고 수학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힘이었습니다. 시골 산골 마을에서 성장한 나는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안에 두려움을 많이 안고 있던 사춘기 소녀였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나에게 많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꿈은 그저 한낮 꿈일 뿐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그저 꿈이라고만 여겼던 꿈이 현실이 되는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육대학에 진학하기를 권유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논농사와 밭농사로 얻은 수입으로 자녀를 교육시키셨습니다. 내 아래로 두 동생도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서울에 있는 고려대학교 수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오빠는 교육대학에 진학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교육대학은 학비가 저렴했습니다. 거의 무료 수준이었습니다. 두 동생들을 생각해서 내가 가졌던 수학자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에 입학했지만 나는 대학공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시험공부에 열을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다른 친구들은 3월 발령을 받았는데, 나는 중간 발령, 9월에 교사가 되었습니다.
대학생활동안 나에게 가장 관심을 끌었던 건, 교육철학자들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교육철학자들에 관한 책을 읽는 것에만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존 듀이와 페스탈로치였습니다. 존 듀이의 경험을 통한 학습, 페스탈로치의 전인교육을 중요시한 교육철학은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내가 시골에서 성장하며 배운 자연학습과 닮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쉽게 다가왔습니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에게 위로가 되는 교육철학이었습니다. 교육대상인 아이들에게 나 혼자 다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인정해 주는 듯했습니다. 내가 실수해도 되고, 부족해도 되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면 된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습니다.
내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나의 교직 경력도 12년을 넘어섰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업무를 맡아 일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선배나 동료 교사가 그런 일을 맡아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고, 나도 그런 능력을 기르고 싶었습니다. 그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진 해는 2002년이었습니다. 그해 교육복지 업무가 학교에 처음 도입되었고,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이후부터 저는 학교 일에 더욱 사명감을 갖고 심취했습니다. 2008년 뇌종양 수술과, 2018년 폐암수술이 그런 이유로 겪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은 학교에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많았습니다. 결혼 후 내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내 생각의 중심은 늘 아이들이 있는 학교였습니다. 학교는 내 삶을 가꾸는 공간이었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가꾸듯,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가는 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은 아이들을 위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내 인생이었습니다. 나를 키워 온 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성장시켰고, 아이들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도전하며 아이들에게 행했던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치고 힘든 순간을 이겨내며 극복하는 힘을 길렀고, 쉽게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긍정의 힘을 키웠습니다. 아이들이 해내는 모습을 보며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가며 자존감도 키웠습니다. 남들이 피하려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며 나 또한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키웠습니다.
나는 2017년 서울시 모범교사상을 받았습니다. 그 상을 안겨 준 건 나를 거쳐 간 모든 아이들이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 얻은 내 나름의 교육철학은, 내가 나를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지향할 목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교사의 삶을 살아 낸 이야기를 이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학급 공동체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기회의 장이기를 바랐습니다. 그 공동체를 함께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내가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시간이, 사실은 학교 현장에서 만난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을 통해 내 인생을 가꾸고 다듬어 온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학교 현장은 예전처럼 녹록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사로 일하다 보면 교사로서의 존재가 서글퍼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라는 이 삼각관계가 조금 더 공감되고 협력적인 분위기로 세워져 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책이 그런 마음으로 읽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학급공동체를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준비했습니다.
이 책에 담긴 학생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