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너머의 세상

by 수수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만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다. 삶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며 배워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교사인 나도 함께다.

급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워 주는 힘.
친구를 아프게 한 뒤 후회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용기.
함께 공부하며 자신과 친구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험.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놀며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는 일.
체험학습을 하며 친구들과 추억을 쌓는 일.
친구들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며 다른 아이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

친구의 잘못에 “괜찮아”라는 말로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서해 주는 힘.
학급에서 맡은 작은 일도 끝까지 해내는 책임.

교실에서 아이들은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질서를 지키며 평화를 만들어 가는 연습을 한다.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습관을 기르기도 한다.

교실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작은 세상 하나씩 품고 있다. 좁은 교실이지만 30여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있으니, 교실 안은 그 많은 세상이 서로 공존하며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얼마나 풍요로운가!

서로의 세상과 세상 사이에서 경험할 기회가 풍성하다.
친구가 있고, 살아갈 힘을 기르는 공간이다.


교과서 안에 있는 배움은 일부일 뿐이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생생한 삶의 경험은 훨씬 크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휴지 하나를 줍는 것도 배움이다. 다친 친구에게 다가가 “괜찮아?”라는 말로 위로하는 것도 공부다. 어느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교실에서 배운다. 교실은 세상으로 나갈 힘을 기르는 공간이다. 교과서 내용을 실천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곳이다. 교실 안에는 교과서에 없는 세상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새롭게 가꾸어 가는 세상이다.

아침을 시작하는 모습은 각각 다 다르다. 밝게 웃으며 교실문을 가볍게 열고 들어오는 아이, 무슨 불편한 일이 있었는지 얼굴 표정이 일그러진 모습으로 오는 아이, 헝클어진 머리를 감추느라 모자를 뒤집어쓴 아이, 상큼 발랄한 표정과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아이. 이 아이들이 학급이라는 작은 세상을 가꾸어 간다. 그 속에서 나는 조력자일 뿐이다.
아이들은 학급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갈등 상황에 마주하며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기른다.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는 힘을 기른다. 이것은 지식을 쌓아가는 것과는 다르다. 교실 안에서는 교과서와 상관없는 배움의 일들이 많다.

어느 해 4학년 학급을 맡았을 때 일어 난 일이었다. 매주 금요일 아침 자습시간에는 학급 음악방송이 있었다. 음악방송 진행자와 곡을 선정하는 사람도 학급 아이들이었다. 1개월에 한 번씩 교체되는 1인 1 역할로 맡은 활동이었다. 매주 학급 아이들이 신청한 곡 중에서 3곡을 선정했다.
이번 달에 곡 선정을 맡은 아이는 운동을 잘하는 남자아이였다. 아침마다 일찍 와서 학교 육상부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는 아이였다.
2주가 지나자, 다른 아이들이 불만을 말했다. 몇 번을 신청해도 한 번도 안 뽑혔다고.

“선생님, 지석이가 자기랑 친한 정호가 신청한 곡만 두 번 뽑았어요.”

나는 곡을 선정한 지석이에게 왜 그랬는지 물었다.

“지석아, 궁금한데, 다른 아이들이 신청한 곡도 많은데 왜 두 번 같은 친구의 곡을 선택했어? 신청한 노래도 두 번 다 같은 건데.”

“그 곡을 신청한 사연이 좋아서 그랬는데요.”

지석이는 퉁명스럽게 내뱉듯이 말했다.

“학급 아이들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라며 곡을 선정한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왜요? 제가 좋으면 되는 거죠.”라고 오히려 나보다 더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내가 좋으면 되죠,라고 말하는 지석이의 얼굴 표정은 정말 자기만 좋으면 된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말에는 모두를 고려하겠다는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아! 무언가 잘못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 아이는 자기가 좋으면 질서도 규칙도 무시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등교한 정호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헐레벌떡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지석이에게 물을 갖다 주어야 해요.” 정호 손에는 500밀리리터 생수병이 들려 있었다.
“지석이가 목이 마를 거예요.” 정호는 금방 지석이에게 달려가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생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은 지석이가 준비해 왔겠지”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갖다 주어야 해요” 정호는 바로 달려 나갈 자세를 취하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슨 상황일지 걱정이 되었다. 지석이는 운동을 잘하고 좀 거친 면이 있는 아이였다. 정호는 키도 크고 몸집은 지석이와 비슷했지만 말과 행동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아이였다. 평소에 두 아이 사이에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남자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가끔 일어나는 좋지 않은 관계가 떠올려지기도 했다.
“지석이가 물을 갖다 달라고 해서 그러는 거니?”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다급한 표정이다. 얼른 갖다 주어야 한다고.

“그래” 하고 넘겼지만 그 이후로도 그 두 아이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다.

나는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학급 아이들을 대표해서 어떤 일을 맡았을 때는 그 일을 할 때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면 안 된다고. 공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기회가 골고루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그런 다음, 학급 아이들의 반응을 보았다. 지석이만 불만 섞인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학급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한다. 그때마다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는 힘을 기른다. 교과서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통해서다. 지식을 쌓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들이다.

아이들은 학급 공동체 안에서 교과서 밖의 다양한 일들을 통해 삶을 배운다.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공정한 선택을 하기 위해 키워야 할 마음의 힘이다.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한 아이들을 보며 옳지 않은 모습임을 깨닫는다. 학급 공동체 안에서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그런 공동체의 분위기는 내 힘만으로는 안된다. 그 안에 속한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 그 뒤에는 부모님의 반응도 포함된다.

누구나 평화로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할 거다. 모두가 바라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건, 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이 다투지 않는 하루를 꿈꾼다.
바로 “괜찮아”라고 모두가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하루를.

나는 학급을 맡으면 가장 먼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게 한다. 교실에 몇 명이 함께 있는지 매일 말해 준다.

“왜 매일 말해요?” 다 알고 있다는 대답이다. 하지만 반복해서 말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잊고 지낸다.
“이 교실에 너처럼 소중한 친구가 이만큼 있다는 걸 매일 알아야 해서 그래. 모두가 소중하다는 걸 계속 기억하게 하고 싶은 거란다.”

나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가르쳐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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