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때였다. 2학기 담임교사로 9월 1일 첫날 교실에 들어갔다. 아침 8시 20분쯤이었다. 남자아이들 몇몇이 교실과 복도를 넘나들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직 학급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얘들아” 당황스러운 눈으로 뛰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불렀다.
‘누군데 간섭이지?’라는 듯한 태도로 여전히 뛸 기세였다.
“여기는 실내잖아. 큰소리치면서 뛰어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잖아.” 나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듣고 하지 않겠거니 하는 기대감으로. 그 아이들은 나를 피해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그날,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아침에 했던 것처럼 소리 지르고 뛰었다.
“잠깐, 이리 와 볼래. 아침에도 말했는데 여기는 다른 아이들도 있는 실내잖아.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지금까지 이렇게 해도 괜찮았는데요.” 한 아이가 당돌하게 대드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나를 자신들이 놀고 있는 걸 방해한 해방꾼처럼 여기듯이.
나는 어이가 없었다. 네, 조심할게요.라고 말하리라 기대했었다.
“학교 안에서 이런 행동은 누구도 허락하지 않아. 누구나 다 하지 말라고 말하지.”
“왜요?” 4학년 아이였다. 그동안 몇 해를 거듭하며 배워 온 규칙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듯이 말했다. 그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말로 다시 되받았다.
“그러면 교장선생님께 직접 여쭤볼까? 이런 행동이 괜찮은 건지?” 라며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알겠다며 교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그 아이가 정말로 교장실에 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 아이는 승리자의 표정을 하며 돌아왔다. 교장선생님이 허락하셨다며.
핸드폰에 녹음해 온 것을 틀었다. 아이가 이런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니, 앞으로 조심해야 할 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긴장되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아이가 녹음해 온 교장선생님의 대답이 이상했다. 알아보겠다고 한 내용과 동떨어진 대답이었다. 나는 급히 동학년 다른 선생님에게 이 상황을 말했다. 바로 확인을 해야 했다. 나와 그 선생님은 고민한 끝에 교장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상황을 확인했다.
그 아이는 질문 내용을 다르게 했던 거다. 아침 시간에 복도에서 뛰거나 소리를 지르며 다녀도 되느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침 자습시간에 하는 활동에 대한 질문으로 바꾼 것이었다. 1학기 때 해오던 아침 활동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데 괜찮은 거냐고. 교장선생님은 담임선생님과 상의해서 하면 된다고, 다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단다. 그 아이는 자신이 교장선생님게 묻는 내용은 녹음을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상의해서 해도 괜찮다는 말만 녹음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가 녹음하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그 아이를 불렀다. 교장실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질문 내용이 달랐더라고, 거짓말을 한 거였다고, 몰래 녹음까지 했더라고. 나와 동료 교사가 보는 앞에서 그 아이는 울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내 앞에서 자신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하겠다며 저지른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복도와 교실에서 뛰거나 큰 소리를 지르는 행동은 잘못된 것임을 모두가 인정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조심해야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교실과 복도의 분위기가 차분해져 갔다.
이 아이는 공부를 잘했다. 운동도 잘했다. 옷도 잘 입고 다녔다. 남부러울 게 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것이 전부인 양 행동하는 듯 보였다. 수학 문제를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빨리 풀려고 애썼다. 그리고는 자랑했다. 으스대는 표정으로 자신보다 점수가 낮은 아이들 앞에서 뽐냈다.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을 잘하는 것이 목적인 양, 체육 시간에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는 의미를 전혀 품지 않았다. 어떤 경우든지 자신이 이기려는 데만 몰입했다. 거친 말과 행동이 난무했다.
해마다 학급 안에서 공부에만 목적을 두는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무기처럼 여기는 아이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면 된다고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그거면 다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말과 행동도 그렇게 했다.
자신의 가정보다 부유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았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이 오직 자신의 출세와 돈벌이에만 치중되어 가는 요즘 사회상을 그대로 아이들에게서 보기도 했다. 시험 점수가 높아 영재 학교에 가려는 아이가 공동체를 평화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점수가 사람을 좋은 성품으로 만들지 않는 것도 보았다. 오히려 공부 성적에만 민감한 아이는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점심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는데, 교실에서 혼자 영어 숙제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놀지 못하는 이유가 학원 숙제 때문이었다. 밖에 나가서 다른 친구들과 뛰어놀면 어때?, 라며 권유하기도 했다. 그 아이는 숙제할 시간이 점심시간밖에 없다며, 자신은 그저 영어 공부를 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쫓기는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이였다. 점심시간에 놀지도 못하면서 공부를 하지만, 정작 수업 시간에는 집중을 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과 사이에서도 날카로운 정서였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지만, 풍요로운 정서를 키워가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영어 단어 암기하느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 나는 아이들에게 점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라고 꾸준히 말해주고 그에 맞는 좋은 영상자료를 보여 주었다.
학년말이 되어갈 때 교장실로 달려갔던 아이도 친구들과 놀지 못하고 영어 공부만 하던 아이도 달라졌다. 함께 놀며 질서를 지키는 아이들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이었다.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멈추지 않고 그런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대화했다. 아이들이 바른 가치관과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아이들은 해낸다는 것을 믿고 경험해 왔기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평화롭게 만들어 갈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것을 위해 공부도 하고, 재능도 키우면 좋겠다고. 그러면 세상이 아름답고 평화로워진다고. 그 목적을 품은 사람이 되어 가면 좋겠다고.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자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