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족함으로 더 크는 아이들

by 수수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는 2학년 담임교사였다. 그때는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다음 해 5학년 담임교사를 맡았다. 일제식 수업이 전부였던 시대였다. 책상 배열이 일렬로 정리되어 교실을 가득 채웠다. 그 아이들 앞에서 혼자 가르쳐야 했다. 지금이야 가르칠 자료를 이곳저곳에서 다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가 전부였다. 나는 늘 자신이 없었다. 교실 바닥보다 높은 교단에 서서 칠판에 필기를 하고 책을 읽혔다. 발표를 시키고 다시 공책에 쓰게 하는 수업이었다. 이런 수업 방식이 부담스러웠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찾았다. 몇몇 아이들이 함께 모여 읽고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는 수업으로 바꾸었다. 내가 많이 가르치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공개수업 때, 관리자 분들과 다른 교사들이 내 수업을 보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일제식 수업을 했을 때, 나는 협동학습 수업을 했다. 모둠활동 학습이었다. 관리자 분들로부터 교사가 많은 걸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맡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모둠학습 활동을 선호했다. 기본적인 학습 내용을 안내하고 더 심화과정은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여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활동할 때 나는 다니면서 안내자 역할을 해주었다.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해주거나 스스로 답을 찾게 했다.

내가 안내해 줄 수 있는 내용 이외에 더 채워가는 일은 아이들 몫이었다. 그 이후로 협동학습이라는 모둠 활동 학습 모형이 학교 현장에 번지기 시작했다. 나 혼자 생각보다 아이들 생각이 모아지면 더 풍성하겠다는 마음으로 했던 수업방식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수업방법을 가장 선호한다.

“너희 생각은 어때?”로 시작하는 수업.
“이제 너희 생각을 들어보자.”
“모둠별로 생각을 모아볼까?”

수업시간 마지막에는 그 학습활동에 대한 생각을 한 마디씩 나눈다.
내가 찾아 안내해 주는 내용보다 훨씬 풍성하다.

“얘들아, 너희 생각을 듣고 싶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 까지거든.” 나는 내가 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아이들을 믿는 말인 동시에 내 욕심을 내려놓는 말이기도 하다.

내 나이 3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나는 학급 학예회에 나도 참여했다. 아이들의 학예회에 활기를 넣어 주기 위해서였다.

“얘들아, 나도 학예회 때 공연할 거야. 기대해.”

“뭐 할 거예요?” 6학년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이 담긴 물음이었다.

“춤 출거야.” 라며 나는 매일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습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수 비의 ‘잇츠 레이닝’ 춤을 췄다. 몇 개월 동안 동네 문화센터에서 배웠다. 나도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잘했다.

“얘들아, 나도 할 거야. 선생님도 발표하기 위해 매일 연습해. 연습하면 돼. 해보자.”

또 다른 학교 6학년 담임교사였을 때는 벨리댄스를 공연했다.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춤이었다. 무대 꾸미기와 음악 선정, 공연 순서 등을 아이들 주도로 준비하도록 안내했다. 완벽한 무대와 음악, 진행이었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나는 벨리댄스 연습도 문화센터에서 적은 비용을 들여 배웠다. 엉덩이를 흔들고, 손과 발의 동작이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흐느적거려 보이는 춤이었다. 나는 의상도 구입했다. 배꼽을 드러낸 벨리댄스 복장을 했다. 학예회에서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나도 못했어. 연습하니까 조금씩 되더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혀 춤을 추지 못했던 내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다. 나는 다른 교사들로부터 차스타일로찌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 아이들의 마음을 잘 공감하는 교사,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하는 교사라고.

나는 내가 답을 찾아주는 것보다 대화를 하며 함께 찾아가는 걸 좋아했다. 필요한 것을 찾고,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해 나아간다. 나는 나 자신이 아이들에게 다 채워줄 수 없는 부족한 교사라고 생각해 왔다.


“나도 줄넘기 못했었어.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했어.”

내가 아이들 앞에서 나의 부족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말하면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정말요? 선생님은 다 잘하잖아요.”
“아니야. 지금도 잘 못하는 거 많아.”
“에이, 선생님 겸손해요.”

“너희 생각을 들어볼게.”라고 말하면 아이들로부터 더 좋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아이들에게 맞는 작고 작은 생각들. 아이들은 그 생각들이 모아 큰 작품을 만들곤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뿌듯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나는 나도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다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해 왔기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우주 같았다. 무궁무진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얘들아, 내가 잘 몰라. 그러니까 나에게 알려줘야 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기를 기대하며 묻는다. 생각을 키워가야 할 아이들이기에.
“선생님, 이건 이렇게 하면 돼요.”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내가 부족하지만 노력한다고 말하며 당당한 모습일 때, 아이들도 내 앞에서 솔직해지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아이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발표했다. 글씨가 또렷하지 않아 무슨 글자인지 모르게 썼던 아이가 손가락에 힘을 주어 또렷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자신에게 곤란한 상황이 닥쳤을 때 울기만 하던 아이가, 울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로 표현했다. 양팔을 엇갈려 돌리는 줄넘기를 못한다며 속상해하던 아이가, 넘을 때까지 연습하더니 기필코 넘었다.

나는 내 경험을 말해 주었다. 서핑을 배울 때도, 처음에는 무서워서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했었고, 승마도 처음에는 무서워서 말 등에 오르는 것도 힘들었다고. 플루트 연주도 처음에는 소리도 못 냈었다고. 글쓰기도 한 문장을 쓰고 또 지우고 다시 쓰고를 거듭했다고.

나는 아이들 앞에서 부족한 것을 자랑처럼 말했다. 그럴 때 격려해 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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