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리고 앉아 있는 너에게

by 수수

교실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 중에는 소심한 아이들이 많음을 경험했다. 그런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넸다. 교실 공간에서 소통하지 않고 혼자 있을 때 외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혼자 하고 있는 것에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대화가 이루어지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학교에서 불편한 것이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작은 것을 해내도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다음에 또 그렇게 해보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관심을 갖고 다가가면 웅크렸던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혼자 자기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모습이 사라져 갔다. 학년초 만났을 때 웅크렸던 아이가 1개월 정도만 지나면 아이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큰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니며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행동을 제외하고는, 나는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며 왁자지껄한 모습이 좋았다.

어느 해에는 교실에서 소심하게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 중에 기초학습 능력이 부진한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교실에서 활발해지도록 도와야 했다. 방과 후 학습 지도를 했다. 학부모와 상의하여 개별 지도를 하겠다고 했다. 세 명이 함께 남아서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목소리를 못 내던 아이들이었다. 방과 후에 개별 지도를 하며 세 명 아이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일대일로 묻고 답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칭찬도 해주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면서 나는 세 명의 아이들과 친해져 갔다. 그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마음을 더 토닥여 줄 수 있었다.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세 아이들은 학교생활 모습이 점점 더 활발해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교실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웅크린 모습으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자주 다가갔다. 나와 대화할 기회를 더 만들었다. 작고 소소한 대화지만 그 아이가 학교에서 충분히 말하도록 도와주었다. 아이들은 조금의 관심만 기울여도 마음을 열었다.

나는 혼자 웅크린 모습으로 있는 아이를 볼 때, 마치 내 모습의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했다. 그때, 나와 친구가 되어 준 아이는 한 명이었다. 다들 공부하느라 바쁜 하루 시간을 보낼 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었던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가 고마웠다. 나에게 말을 걸어 주어서. 나는 직장에서도, 연수받으러 간 곳에서도,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 주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하지 못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적용했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와 웅크린 모습으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싶은데, 상대해 주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저학년인 경우에는 내가 먼저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 들어가도록 도와주었다. 함께 할 친구를 찾아준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 아이들 몇 명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웅크리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달라고.
“한번 다가가서 같이 놀자고 말해볼래?”

교실 안에서 외로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아이는 없을 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 웅크린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했다. 일어나고 싶고, 나가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 할 마음을.

만화를 잘 그리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도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집에 갈 때까지 혼자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밖에서 뛰어놀 때도 자기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 아이 옆에 다가갔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구나. 와, 이야기가 있네!”
“네. 등장인물이 있어요.”
“와, 등장인물이 정말 많은데?”

그 아이는 나에게 등장인물을 소개해 주며 만화 줄거리를 들려주었다.
“이거 책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정말 책으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지금 책으로 묶었어요.” 아이는 공책을 묶어서 책처럼 된 것을 보여 주었다.
“응, 그렇게도 좋고, 진짜 책으로 말이야.”
“진짜요?”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진짜 책으로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선생님은 선희가 점심시간에 다른 아이들이랑 놀았으면 좋겠는데. 그림은 집에서도 혼자 그릴 수 있지만 친구들이랑 노는 건 집에서는 못하잖아.”

“그런데 저는 그림이 좋아요.”
“그렇구나. 친구들이랑 놀아본 적은 있니?”

“네. 사실 놀다가 친구들이랑 갈등이 생겼었는데 그때, 저를 탓하는 말을 했어요. 그 이후로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서 놀고 싶지 않아요. 혼자가 편해요.”

“그랬구나. 그럴 때 정말 힘들지.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앞으로 학년이 올라가도 그 학급 친구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데, 매번 혼자 지내려고? 갈등이 생기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그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면 돼. 놀면서 그런 힘을 기르는 거야.”

나는 마치 내 딸이 겪은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듯이 말했다.

다음 날부터, 그 아이는 점심시간에 교실에 혼자 앉아 있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줄넘기도 하고 피구도 하며 놀았다.

웅크린다는 것은 단순히 쪼그리고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만한 용기가 없어서였다. 의기소침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교사인 나는 그런 친구들을 일으켜 줄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그 아이를 일으킬 힘, 다독여 주는 힘을 기르며, 나도 그 아이와 함께 일어나는 힘을 키웠다. 홀로 웅크리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작은 힘이 되어 주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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