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급 운영의 기초를 아이들과 함께 한다, 로 삼았다. 내 생각보다 아이들로부터 꺼내어지는 다양한 생각들을 모아 펼쳐내는 활동들은 생동감이 넘쳤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신이 나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아이들 생각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보잘것 없이 보여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움직이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자존감을 키우는 기회다.
학급활동으로 했던 모든 것들은 학급 임원을 중심으로 학급 전체 학생이 참여하여 계획하게 했다. 매월 생일파티, 여름 캠프 준비, 학예회 준비, 대청소 활동, 문집 만들기, 학급 놀이 만들기, 학급 협동 작품 만들기, 졸업식 학급 영상 만들기. 아이들이 계획하고 준비하는 활동이다 보니, 나 혼자 계획한 대로 이끌어 가는 것보다 시간은 몇 배가 더 필요했다. 회의 시간에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다투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나는 그럴 때, 조정자의 역할을 했다. 조력자다. 살짝, 방향을 잡아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6학년 학급 아이들의 1박 2일 캠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18년 전 일이다. 나는 내가 맡은 학급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서울 난지 캠핑장이 생겼고, 나는 그 장소를 활용하고 싶었다. 지원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자비로라도 해주고 싶었다. 어떤 사명감에서였는지 나는 학급 아이들에게 쓰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가정이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내가 맡은 아이들이 멋진 추억을 간직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학급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아이들은 모두가 좋아했다. 교장선생님과 학부모님들도 쾌히 승낙을 해주셨다.
아이들도 나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프로그램 전체를 학급 아이들이 계획하도록 했다. 그 결과, 학급 전체 아이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모둠별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기발한 것들로 만들어졌다. 1박 하던 날, 폭우가 쏟아져 긴장된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만,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던 학급 캠프 활동이었다. 모둠별 요리 프로그램도 각양각색이었다. 모둠별로 다 달랐다. 떡라면을 끓이고, 떡볶이를 하고, 삼겹살을 굽고, 삼계탕을 준비해 온 모둠도 있었다. 낮에는 난지 숲을 활용한 탐험 프로그램도 있었다. 밤에는 학급 아이들이 모두 함께 모여 앉아서 학교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아이들 생각은 내 생각의 틀을 훌쩍 뛰어넘었다. 활동 시간 배분도, 프로그램 진행에 필요한 인원 배치도 정교했다. 나는 아이들이 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믿는다. 아이들을 믿고 기회의 장과 시간을 주면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는 것을. 다투기도 하고, 우왕좌왕 하기도 하지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런 모습은 서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런 모습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교사를 하며 경험한 아이들의 세상에서 발견한 것은 아이들은 나보다 더 창의적이고, 더 유연하게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대청소 활동도 아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단순히 청소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청소활동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청소를 하고, 활동 후 소감을 발표하기까지 모든 것은 삶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힘을 기르는 기회가 된다. 도와야 한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돕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를 정리해야 하는 지를 점검하고, 누가 그 구역을 맡을지 공정하게 정한다. 스스로 하는 청소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더욱더 열심히 한다. 맡은 구역마다 청소 요령도 다르다. 내가 지나갈 때, 나를 불러 세우고 자랑하는 아이도 있었다. 자신이 정리하는 방법이 왜 특별한지를 알려 주고 싶어 했다. 나와 아이들은 청소가 귀찮은 일이 아니라 창의적인 학습 활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자를 옮기는 순서, 쓰레기를 모으는 방식,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기준까지 아이들만의 질서가 생긴다. 억지로 하는 청소가 아니라 함께 공간을 가꾸는 일이 된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틀을 깨곤 했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학급 환경 정리를 할 때마다 내가 추구하는 생각이 교실 환경판에 드러난다. 요즘은 교실 환경 꾸미는 것에 대해 간섭하는 관리자가 없지만, 내가 초임 때는 틀에 짜인 환경정리였다. 글자체는 정자체였고, 작품이나 게시물은 거의 정형적인 모습으로 게시되곤 했다. 나는 글자를 정자가 아닌 그림처럼 써서 오려 붙이는 걸 좋아했다. 반듯한 모양으로 자르지 않고 글자의 모양 따라 오려서 붙였다. 그때는 내가 게시한 환경판 글자를 보면, 성의 없이 아무렇게나 글씨를 쓰고 오려 붙였다고 생각이 될만했다. 과자 상자를 펼쳐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재활용품으로 성을 쌓는 활동, 나는 틀을 깨는 걸 좋아했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었다.
1989년, 미술 시간이었다. 운동화 모양 도안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디자인하고 색칠하는 활동을 했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치기를 원했다. 일상에서 보이는 것에 묶이지 않기를 바랐다. 생각의 틀을 깨도록 이끌어 주었다. 아이들은 짝짝이로 색칠도 하고, 디자인도 다양했다.
“괜찮아. 네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하지만 악하거나 공격적인 건 허락하지 않을게.”
작품 활동에서 제한을 두는 내용은 딱 한 가지였다. 난폭하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표현들이었다. 욕, 칼싸움, 총싸움, 상대방을 공격하는 표현들이다.
“선생님, 이거 사용해도 돼요?”
“그럼.”
학습 준비물로 비치된 교실 안의 물건은 학습활동할 때에 필요하면 다 사용해도 된다고 말해준다. 창작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거라면 필요한 것들은 다 가져다 써도 된다고. 아이들은 신난다. 커다란 도화지를 가져와 돌돌 말기도 하고 찢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은 준비물을 사용하는 모습이 과감해진다. 잘못되면 버리고 다시 가져오면 된다.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선생님은 실수를 더 많이 한단다. 실수하면서 되는 거란다.”
내가 아이들이 마음껏 창작활동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과 필요한 준비물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아이들이 했다.
맘껏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버려지는 것도 있을 수밖에 없다. 정답이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아이들이기에, 버려지는 것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학습시간 이외에는 이면지만 사용하게 했다. 이면지로도 아이들은 필요한 놀잇감을 충분히 만든다. 기차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고, 그림 그리는 종이로도 이용했다. 교실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의 생생한 움직임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것이 허용될 때 아이들은 그 안에서 행복하다. 그 신념으로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이 교실 안에서 맘껏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선생님 보고 해도 돼요?”
“참고해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컵 손잡이를 바꿔보고, 모자의 디자인을 바꿔보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동안 마음이 커지고 생각이 커지고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며 존중하는 힘이 커진다.
“선생님, 이렇게 하면 어때요?”
“응, 멋진 생각인데!” 창의적인 것은 모방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해주었다. 나는 아이들의 기발한 생각을 보며 틀에 얽매인 내 생각을 깨뜨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