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스스로 크는 아이

by 수수

학교에서 학습 시간은 거의 1시간 단위로 프로그램이 움직인다. 2시간씩 묶어서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과목별 1시간으로 운영한다. 나는 아이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도달할 학습 분량을 안내한다. 수학 시간에는 배운 내용을 토대로 나머지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국어 시간에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글로 쓰는 일이 많다.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이 있을 때는 학습 내용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기도 한다. 색종이를 접어 꾸미기, 색종이 오려 붙이기, 식물이나 동물 관찰한 내용을 글로 쓰기,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습 활동은 스스로 해내야 한다.

몇 해 전 일이었다. 2학년 아이들이었다. 매 시간마다 빨리 완성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항상 느린 아이가 있었다. 걸음걸이도 사뿐사뿐했다. 한마디의 말도 조심스럽게 하는 아이였다. 느린 아이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수학 문제 하나를 풀더라도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 문제 하나에 매달렸다. 내가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을 때, 스스로 하겠다며 거절했다. 수학 시간이 끝나갈 즈음, 느린 아이는 문제를 다 풀지 못했다며 울었다.

“수현아, 다 풀지 못해서 속상하구나! 문제를 많이 풀지 않았어도 괜찮아.” 한 문제도 빠짐없이 다 풀어야만 하는 줄 알았던 수현이었다.

“수현이가 배운 내용을 생각하며 스스로 문제를 풀려고 노력해서 몇 문제를 풀었잖아. 다 풀지는 못했어요. 수현이가 끝까지 스스로 해낸 거잖아. 그러면 된 거야. 다 풀지 못한 문제는 다음에 기회 되면 해결하면 돼.”

나는 수현이가 느려도 스스로 생각하며 해낸 것을 칭찬해 주었다. 수현이는 울음을 그쳤다.

“정말 괜찮아요?” 수현이의 마음이 가벼워진 물음이었다.

수현이는 다른 과목 학습 시간에도 느린 아이였다. 국어시간은 더욱 심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훨훨’이라는 말을 넣어 짧은 글짓기를 할 때, 다른 아이들은 순식간에 한 문장을 만들어 발표했다.

“선생님 생각이 안 나요.”

수현이의 대답은 늘 똑같다.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몇 가지 문장을 만들어 발표를 하고, 글로 옮겨 쓰는 동안 수현이는 멈춰 있었다. 수현이가 글자를 모르는 아이는 아니었다. 책도 또박또박 읽는 아이였다. 수현이는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더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한 것이 정확한 답인지 불안해하는 듯했다.

“수현아, 바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면 돼, 틀릴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수현이에게 뭐든지 말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틀리는 건 없다고. 생각을 말하고 쓰다 보면 쉬워진다고.

수현이는 색칠을 할 때에도 색종이 접기를 할 때에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느렸다.

“선생님, 저 색칠 다 못했어요.” 수현이는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 괜찮아. 수현이가 다 할 동안 기다릴게.”

나는 수현이가 다 마칠 때까지 다음 활동을 이어가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수현이가 끝마칠 때를 기다리며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색종이 접기 시간에도 수현이는 영낙없이 느렸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접는 순서에 맞춰 천천히 따라 오지만, 수현이는 매번 느렸다.

“선생님, 저 못했어요.”

“그래, 기다릴게. 얘들아, 잠깐만 수현이 다 할 때까지 기다리자.”

“얘들아, 수현이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거 알지? 너희도 느릴 때 있잖아. 나도 느리게 하는 거 많단다.”

아이들은 수현이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안다. 몇몇 아이들도 내 속도대로 따라오지 못했지만 그 아이들은 주변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며 따라왔다. 수현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스스로 해내려고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느린 수현이가 답답할 때도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내야 할 학습 내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교육과정대로 학습 지도를 하려면 느린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도와주면서 맞추어 가야 했다. 하지만 수현이는 달랐다. 느리지만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했다. 나는 수현이의 생각을 존중해 주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수현이는 학습활동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수학 문제 풀이도, 국어 글쓰기도, 색칠도, 긴장하는 모습이 사라져 갔다. 수학문제도 그 시간 안에 풀어야 할 과제를 다 해냈다. 국어 글 쓰기 시간에도 멈춰 있지 않았다. 색칠을 할 때에도 색을 고르느라 긴 시간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수현이는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허락했다. 나는 수현이가 느릴 때, 다그치지 않았다.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할 때도 수현이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인정해 주었다. 수현이는 자신이 느리다는 것 때문에 방해받지 않았다. 느림에 맞추어 혼자 해내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느린 아이의 마음을 챙겨주면 그 아이는 느린 것에 주눅 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가르쳐 준다는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더 잘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내가 도와야 하는 건, 자신감을 갖게 하는 거였다.

“얘들아, 느린 건 잘못된 거 아니란다. 느려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다 해낼 수 있단다. 조금씩, 천천히 해내면 다 되거든.”

나는 수현이의 느림이 다른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살펴야 했다. 나는 느려도 기다려 주는 힘과 다 해낼 수 있다고 믿어주는 힘을 키웠다. 느리지만 스스로 해내는 아이를 보며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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