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매 Oct 06. 2024

투명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묻자

당신은 답했지

별거 없다고, 그저 식물의 이름을 개 외워두고

추운 밤에 기댈 수 있는 단어를 몇 개 가져두라고


이를테면, 화로 같은

화로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것과

화로라는 단어를 가지는 것은 얼마나 다른 일일까

  

불안한 내게 당신이 결국 말하고자 한 건

생의 언어를 키우라는 것

작은 화분 속의 식물을 키우듯이

너무 자주 물을 주면서 재촉해도 안 되고

알아서 크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도 안 된다고

 

생의 언어를 키우는 자리는 그러니까

신발장보다는 창가가 좋군.

당신이 말했지

왜? 하고 묻자

잠깐 스치는 곳과 오래 머무는 곳의 차이라고.


걱정 많은 나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당신에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때론 황량하고 때론 설워서

식물의 성장에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상관없다. 오히려 튼튼한 꽃이 필 거야.

돌아온 당신의 대답에서

나는 이건 꿈이라 확신했네.

내게 그런 사랑 담긴 말을 주는 사람은

여기에 없으니까.


그런데도 눈을 뜨니 당신 있었네

창가의 화분 있을 자리에 말없이 앉아서

해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

성묘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무덤과 같은 모습

   

생활의 언어와는 조금 달라

생의 언어란

당신은 내 마음을 읽은 듯 창밖을 보면서 읊조렸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순간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풍령이여

생이란 서정이구나

서정의 언어구나


나는 당신이 보고픈 밤에 당신이 깃든 단어를

조심스레 머금는 버릇이 생겼다

굴리지 않았다 닳을까봐






매거진의 이전글 야인의 피아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