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주에 아침 일찍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지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한 분이 바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약봉지를 쑥 내밀었다.
“선생님 저 정윤이 엄마예요. 이거 감기약인데 정윤이가 점심때 먹을 감기약을 집에 놓고 갔지 뭐예요. 정윤이한테 점심때 먹으라고 전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정윤 어머니.”
나는 점심시간에 정윤이에게 감기약을 전해 주었다.
“선생님 저 전화기 잠깐만 빌려 주세요.”
정은이가 어머니한테 전화해야 한다며 전화기를 빌려 달라고 했다.
“엄마, 제가 아침에 감기약을 깜빡하고 안 가지고 왔어요. 어떻게 해요?”
정은이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선생님 혹시 제 감기약.”
“아 어떻게 해. 정은아 선생님이 실수했다.”
정은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가 끼어들었다.
‘세상에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침에 만난 어머니는 정윤이 어머니가 아니고 정은이 어머니였다. 정은이의 감기약을 정윤이에 먹인 것이다. 정윤이가 내가 준 감기약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먹은 것은 정윤이도 감기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학기 초라서 학부모님들의 얼굴을 잘 몰랐고 정은이와 정윤이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 반에는 이름이 비슷한 아이들이 많았다. 학기 초에 이름을 잘 못 부르는 실수를 많이 하였다. 단순히 정윤이와 정은이, 수현이와 수연이, 형준이와 현준이처럼 이름을 부를 때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잘 못 부르는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생김새나 행동이 비슷하거나 집중하지 않고 건성으로 이름을 부를 때 자칫 실수를 하게 된다.
“성용이 너 복도에서 그렇게 뛰어다닐래? 새치기까지 하네.”
“선생님, 저 성용이 아니에요. 그리고 원래 여기 내 자리예요.”
점심 먹기 위해 복도에서 줄을 설 때 화장실에 갔다가 뛰어 와서 새치기를 하던 영호가 나에게 따지듯이 말을 한다.
“영호야 방과 후 피아노 갈 시간이야. 빨리빨리 가방 챙겨라.”
“선생님 저 영호 아니에요.”
‘이크 또 실수를 해버렸네.’
어머니도 헷갈린다는 쌍둥이 진호와 진수의 경우는 더욱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에 특징을 빨리 체크하지 못하면 열에 여덟은 실수를 한다. 어느 날 아침 내가 제안을 했다.
“얘들아 지금부터 내가 이름을 잘 못 부를 때마다 벌금을 내겠다. 지금부터 바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날이 갈수록 현금이 솔솔 늘어났다. 옆 반 선생님 결근 때 수업을 한 시간 했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옆 반 우영이가 나에게 찾아와서 자기 이름을 우엉이라고 불렀다면서 벌금을 받아 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이름을 정확히 불렀음에도 자기 이름을 잘못 불렀다면 벌금을 요구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선민아 나는 너를 분명히 선민이라 불렀다.”
자기를 성민이라 불렀다고 선민이가 따지고 든다. 이쯤 되면 두세 명의 증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선민아 네가 잘못 들었어. 선생님이 정확하게 선민이라고 불렀어.”
두서너 명의 아이들이 내 편을 들어줬지만 너무나 완고하고 강력한 선민이의 반발에 어쩔 수 없이 벌금을 내어 주고 말았다. 이후로도 많은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잘못 불렀다며 말도 안 되게 우기는 일이 많아졌다.
벌금을 받는 아이들, 안 받는 아이들이 생기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겼다. 나는 일부러 실수를 좀 더 많이 하여 벌금이 많은 아이들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나의 벌금을 안 받은 아이는 거의 없게 되었고 우리 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이제는 실수하는 횟수가 완전히 줄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통 크게 마음먹고 벌금의 액수를 좀 더 올렸다.
‘이러다가 살림 거덜나는 거 아니야?’
다행히 일주일 동안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얘들아 벌금 이벤트는 여기까지다. 알겠지?”
“아~~~.”
“뭐야~~~.”
아이들의 한숨 소리와 궁시렁대는 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살림이 거덜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화끈하게 약속을 했다.
“얘들아 내일 선생님이 통닭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