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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커리어 Sep 04. 2024

위클래스에 양다리 걸치는 고객들

고등학교 위클래스에서 4년, 현재는 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은 학생의 안녕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학교에는 다양한 부서가 있는데 위클래스 상담쌤과 공조가 잘 되면 학생들에게 여러모로 유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투 톱 인물을 꼽으라면 저는 보건교사와 교육복지사 이 두 분을 자신 있게 추천하겠습니다. 

    

보건교사는 아시다시피 보건실의 담당자이자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셨던 분입니다. 보건실에 생각보다 학생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경기일보(2020.01.20.)에 의하면 보건실 이용 학생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경기도보건교사회 주관 설문 조사(2019년 5월 기준) 결과, 1일 보건실 이용자 수 50명 이상인 학교가 54.7%로 그중 100명 이상인 학교도 전체의 3.9%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보건교사는 학생들의 건강검진, 신체검사, 감염병 예방, 성교육, 응급상황 등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보건법에 따라 앞서 말씀드렸던 정서·행동특성검사 1차 실시를 맡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그로 인해 위클래스 상담교사와 서로 니미락 내미락 하며 트러블이 있는 학교도 제법 있다는 후문을 살짝 알려드립니다. 쉿!).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교과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수업시간에도 복통, 두통, 소화불량 등으로 보건실을 찾습니다. 체감하기로 요즘은 과호흡이나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시험 기간에만 주로 방문하는 고정 고객들도 있지요. 그래서 보건실은 주로 학교 내 1층이나 2층에 교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나 봅니다.      


2007년부터 상담교사로 근무해 온 저의 선배 상담교사 한 분의 얘기로는 임용이 된 당시는 상담실이 없어서 보건실(보건교사가 없었던 학교인가 봅니다)에서 학생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때로 간단한 진통제나 소독약 등으로 아이들의 증상을 처치해 주었다며 보건실 방문하는 애들이나 우리의 고객들이 많이 겹친다고 하더군요. 몸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보건실을 찾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마음의 상처에도 밴드로 붙여주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이 유력한 명제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기 마련이고 우울이나 불안이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스트레스가 겹치다 보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해하는 학생 중에도 보건실에 들렀다가 위클래스로 연행(?)되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양다리(?) 고객들에 대한 정보를 보건 선생님을 통해서 듣게 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보건실에 갔다 왔다고 자연스레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의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또 한 분은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채용된 교육복지사(이하 복지쌤)입니다. 아직은 전국에 1천713명으로 전체 교육공무직의 1%에 속하는 미약한 숫자에 불과합니다(교육부, 2021).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라 함은「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4조 제1항에 따른 학생이 밀집한 학교에 대하여 교육·복지·문화 지원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사업을 말하는 데 주로 교육급여 수급권자, 차상위계층의 자녀, 다문화가족의 자녀, 북한이탈주민의 자녀, 특수교육대상자 등이 주 대상이 됩니다. 한마디로 사회복지사가 학교 내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지원을 해준다고 볼 수 있지요.      


제가 근무했던 고등학교의 위클래스와 교육복지실은 바로 이웃하고 있어서 가까이에서 복지쌤의 업무를 살펴볼 기회가 많았고 협업도 많이 했습니다. 복지쌤은 아침밥을 안 먹고 오는 학생들을 위해 아침밥을 준비합니다. 그 와중에 밥 먹으러 오지 않는 애들을 챙겨야 하고, 메뉴에 불만이 있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가며 간식을 챙겨주는 등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꾸러미(각종 밀키트, 생필품 등)를 배달하기도 하고 가정방문을 해서 형편을 살펴보고, 식구들을 만나 도울 방법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소득은 얼마인지, 집은 자가인지, 빚이나 대출 규모, 아픈 가족의 상태, 가족관계, 다른 기관과의 협업 상태 등을 파악합니다. 한 번은 사고뭉치 학생의 가정에 방문했는데 주 양육자이신 할머니가 손주의 어릴 때 사진을 수십 장 꺼내면서 아팠던 인생 대장정을 읊으시는 통에 3시간 넘게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 손을 잡고 울다가 돌아온 적도 있었지요.    


복지쌤은 굿네이버스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같은 기관과 협업하여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받도록 돕는 일도 합니다(이를 위해 백만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일급비밀입니다. 쉿!). 예를 들어 제빵에 관심이 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다면 장학금으로 학원비나 재료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지요. 단회적인 사업이 아니라 제빵자격을 취득하는 전 과정을 따라서 챙기고 독려하는 기나긴 여정이랍니다.      


 또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예산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프로그램은 학교마다 다양한데,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큰 사업 꼭지로 밴드부를 운영하며 공연도 나가고 무대 경험을 쌓도록 지원했습니다. 밴드부를 예로 말씀드리면, 매주 연습, 부원들 출석, 외부 강사와 협업, 외부기관과 공연 일정 협의 및 예산 품의 관련 문서 작업, 공연 전 악기 이동, 이동 시 교통편 확보 등 챙겨야 할 일들이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수년간 지도하며 이끈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곁에서 복지쌤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차라리 위클래스 일이 좀 수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려운 가정의 내밀한 형편을 살펴보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다각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지원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학생을 만나 상담을 하면 그 십몇 년을 살아온 삶의 뿌리가 너무 견고해서 한계를 많이 느끼기도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복지쌤의 경우도 온 가족구성원의 더 나은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 한 가정을 파고들다 보면 거대하고 복잡한 뿌리가 얽혀있어 큰 무력감과 한계를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이 한편으로는 담당자를 지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힘든 아이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어른들은 왜 그 모양인지, 매정한 세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가끔은 힘든 일에 비해 너무나 하찮은 박봉, 그 외 여러 상황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둬버릴까 고민도 합니다. 하지만 복지쌤의 유머에 깔깔 웃어주는 아이들을 보거나, 5번 만에 바리스타 자격시험에 합격했다고 소식을 전해올 때, 아이들이 밴드 연습하려고 학교에 온다고 할 때면, 이러한 징검다리 역할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게 되며, 아이들과 자신의 궁합이 찰떡이라고 자위합니다. 그런데 혹여 장래에 학교사회복지사를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경쟁률은 높고, 급여는 매우 낮음. 100% 보장) 엄청난 신체적·심리적 소진이 올 가능성이 높으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지원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흑...     


복지쌤과 제가 함께 근무할 때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던 말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개그맨들이 유행어를 쓰듯이 심심찮게 되풀이하던 말은 바로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였습니다. 

이 말은 이렇게 쓰이게 됩니다.     


상담쌤:" A가 오늘도 점심때쯤에야 학교에 왔다네요."

복지쌤: "아이고 쌤, 학교 오는 게 어디예요.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 "    


복지쌤:" 밴드부 애들이 공연하는 날 앞두고 실력이 안 늘어서 걱정이네요."

상담쌤: "아이고 쌤, 애들이 연습하는 게 어디예요.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 "    


이렇게 중간중간 ‘감’ 자에 엑센트를 넣어서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로 되받다가 결국 키득키득 웃게 됩니다. 얘기가 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싶으면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로 마무리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진짜로 마음이 감사한 색깔로 물들어지는 것 같더군요.


복지쌤과 상담쌤의 협업은 대체로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각자가 운영하는 이벤트나 프로그램에 시간이 허락하면 가서 도와줍니다. 제가 복지실에 가서 꾸러미나 간식을 포장하는 일도 하고 밴드부 악기를 옮기는 일도 합니다. 그녀는 주로 힘쓰는 일에 덩치 큰 저를 이용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흠...


또 복지쌤이 위클래스에 와서 ‘친구와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의 도우미를 자청하거나 사과 데이 행사 홍보를 하기도 합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상담 중에, 학교에 오는 것은 너무 싫지만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거나 노래 부르는 데 소질이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먼저 동의를 구하고 복지실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연계를 하는 것입니다. 복지쌤은 대상 학생이 상담이 필요하다 싶으면 위클래스로 연계하고요. 그런 케이스가 많지는 않지만 매년 서너 명은 잘 연계해서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도록 적응을 돕기도 했지요. 그래서 이 두 곳은 협력할수록 내담자를 더 잘 돕게 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위클래스와 복지실은 보통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북적대어 활기가 넘치는 시장바닥 같은 곳이 됩니다. 비록 ‘과자부스러기 흘리지 말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바로 버려라~.’, ‘목소리가 너무 크잖니, 쫌 낮춰줄래!’, ‘친구를 왜 놀리고 그러니! 혼 난다!’, ‘수학 시간에 그만 좀 자거라, 소문 다 났어~.’, ‘왜 급식을 안 먹고 여기 와서 간식 타령이냐!’ 등 여러 잔소리가 난무하지만, 그 순간은 우리에게 일상적이고 매우 평화로운 장면입니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여러 곳 중에 보건실과 교육복지실, 위클래스의 아름다운 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도움받았듯이, 저도 보건쌤과 복지쌤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또 의지했습니다. 


보건쌤, 복지쌤 모두 감사합니다. 그대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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