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들이 사는 세상 物
物과心. 그 兩面
프리랜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처음 강사의 길을 시작하게 된 첫 번째가
NIA에서 주관하는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강사였다.
그 일을 하며 더 다양한 강의로 발을 넓히며
여전히 프리랜서 강사로 살아가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지역의 각기 다른 계층을 만나
수업을 하면서 그들이 가진 부족함의 차이에 놀라곤 한다.
이런 것들 모여 세대 간의 격차를 벌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거겠지 싶다.
100세 시대 인생의 절반의 조금 못 산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세대 간의 부족함은
마치 전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이해한 지 못할 정도의 아주 큰 차이였다.
나는 요즘 이런 차이에 대해 조금 적어보고 싶다.
그리고 어중간한 소위 영포티에 접어든 나의 감정들도 함께.
50여 년 전 배 고파본 세대는
지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한다.
이제 조금 먹고살만해졌는데,
통장에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사기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고 한다.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수업을 처음 의뢰받았을 때
이런 것도 수업하는가? 했던 나의 오만을
현장에서는 절실히 깨닫는다.
특히나 집에는 없지만 집 외의 모든 곳에서
너무나 당연히 사용되는 각종 카오스크.
스마트폰으로 하는 각종 어플은 그나마 전화로
어찌어찌 버텨내며 살았더니,
밖으로 나와 무언가 하려고 보니
식당도 휴게소도 주차장도 극장도 야구장도 관광지도
모두 기계화되어 그 앞을 서성이다 돌아온다고 했다.
사람을 불러 묻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고 했다.
너무 편리해졌다 여긴 세상의 발전의 속도가
노년에 접어든 어른들의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삶의 질을 망가트려 놓은지는
나조차도 전혀 몰랐으니까.
터치와 누름의 차이부터 배워야 하는
어쩌면 지금의 편안을 위해 젊은 시절
많은 고생을 하며 살아온 고령의 어르신들.
코로나 이후 비대면이 당연해진 지금의 세상에서
그들에게 이런 배움이 삶의 질이 아닌 생존과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배움이라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안다.
고백컨데
목소리크로 고집세고 무섭기만 한,
우악스럽고 함부로 반말하는 어르신을
규칙을 어기고도 부끄러움 없는 고령이 노인을
나는 참 싫어했었다.
그 무섭고 어려운 노인이 수업이 끝난 내게
자주 따뜻한 밥을 권하신다.
그네들의 눈에 한참이나 어린 내가
다정하게 알려드리는 이 조그만 기계의 사용이
얼마나 당신들을 편안하게 했는지를 말하고 감사해하며
당신들의 인사 방식인 식사를 권한다.
(하지만 주로 완곡히 거절하고 온다.)
신기한 스마트 폰이나 이름도 어려운 키오스크 같은
요상한 기계를 가르쳐 주러 멀리서 온 나를
편안히 여기며 강사가 아닌 자신의 딸 혹은 손녀처럼 대하는
조금 무례하게 보이는 그 행동 안에는
사실 부끄러움과 다정함이 공존하고 있다.
젊어서는 일하고 먹고살아 남느라
배우지 못하고 보낸 숱한 나날들이 지나고 보니
이미 백발이 되었다고 말하는 어르신들.
이제 좀 편히 지내려니
초 개인화된 세상에, 아주 빠르게 변하는 지금은
노쇠한 머리에 뭘 자꾸 배우고 집어넣어야
살아낼 수 있다고 하니
목청이 커지고 우악스러워 지지 않겠냐고 하신다.
70은 경로당에서 앉지도 못한다고 한다.
아직도 살아내야 할 날이 30여 년이 남은
100세시대의 어르신들.
디지털 새내기인 그들이 이제 나는 사랑스럽다.
좀처럼 타인과의 밥상을 허락하지 않는
(차리기도 어렵고 함께 먹기도 어려운 밥상 아닌가!)
요즘을 사는 나는 그들의 그런 말에서
마음 깊은 따뜻함 느끼며 일의 보람을 얻었다.
밥 먹고 다니라는 투박한 오지랖이
따뜻함과 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며
나는 지금도 프리랜서 강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