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청소년 心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는 나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부터 청소년들 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만나 짧게는 20분
길게는 3~4일 정도의 수업을 하곤 한다.
마음이 쓰일 만큼 의욕적이고 열심히 하는 아이부터
세상 모든 것이 관심 없고 더욱이 이 수업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아이
특활수업보다 강사인 나에게 더 관심이 많은 아이
그냥 산만하고 집중을 못하는 아이
다 관심 없으니 알아서 하고 가라는 표정의 아이
수업내용보다는 강사가 줄 선물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아이 등등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내 아이들이 생각나기도 하면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넘쳐나는 것이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각각의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다른 듯 비슷하고
나의 아이들과 비슷한 듯 다르다.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안타깝고 가끔은 무섭기도 한
풍족한 듯 마음이 텅 빈
요즘의 아이들과 청소년들.
미취학부터 초등저학년 아이들의 수업은 주로 교구수업이다.
사실 배움보다는 체험에 가까운 짧은 시간의 수업.
그럼에도 어린아이들은 집중하고 의욕적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시끄럽다;;;;;)
가끔은 어르신들의 수업과 비슷하다고 느낄 만큼,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창의적이고 창의적이다 싶은 신기한 모양의 무언가를!
수업의 내용보다는 안전문제에 신경을 쓰는 게 우선이라 온몸이
긴장을 하는 탓에 마취학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온몸이 뻐근하다.
그래도 돌아가며 생각하면 왠지 미소 지어진다.
맑고 깨끗하고 높은 산에 다녀온 듯 몸은 힘들고 마음은 상쾌하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이 있고 없음이 너무 뚜렷이 보인다.
천진함 속에 사랑이 아닌 슬픔이 느껴질 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족함들이 아직은 마음까지 다치지 않았겠지만,
그 아이가 자라나며 느낄 상실감이나 부족함이 열등감이 되지 않도록
크지 않기를 내가 느낀 이런 감정이 잘못 느낀 것이길 바랄 뿐.
청소년기 아이들.
저마다 비슷해 보이고 결핍을 잘 감추고 있어
어린아이들처럼 눈에 띄는 슬픔은 없다.
내 수업은 중학교에 방문해서 한 반을 온전히 4교시까지
4일 또는 5일간 진행
나는 이 수업을 2년째 하고 있다.
이론도 있지만 함께하는 활동 수업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도에 따라 성취도가 많이 달라진다.
학교에 따라, 반 분위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중학생들을 만나는 수업은
몸의 힘듬보다는 마음의 불편함이 더 크다.
중학교 1학년교실은 참 재미있다.
선생님보다 훨씬 더 큰 앳된 얼굴의 학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보다 작지만 어른스러운 말씨를 가진
아이들이 함께 동급생으로 있다.
온몸으로 우리는 지금 성장 중임을 보여주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업에 임한다.
처음에는 불손하던 아이가 마지막날에는
아쉽다고 가지 말라고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아이가 큰 도움이 안 된다 싶은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내 잠만 자는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모든 경우를 겪어내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며칠간 동안의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아이들의 여러 모습을 보곤 한다.
그런 수많은 모습 중
아직 어린 그 아이들이 가장 안쓰럽고 안타까운 순간은
어른에 대한 적의(敵意)를 가지는 아이들이다.
한 학교에 한 두 명은 있는.
그들은 소위말하는 모범생일 때도 아닐 때도 있다.
다만 그들은 이미 세상 모든 일에 흥미를 잃은 눈을 가지고 있다.
매섭게 반항하는 눈이거나 뭔가 체념하는 눈이거나.
그런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어쩐지 괴롭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필요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시절이다.
배고픔이나 전쟁을 겪지 않고 이전 세대에 비해 귀하게 자라는 아이들임에도
어떤 상실감을 가진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타인에게(가족이든 친구든 선생님 혹은 그 무언가에게)
실시간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너무 일상이 된 지금의 세상에서
아직 미숙한 청소년이 건강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풍요로워졌다는 것은 어쩌면 물질적인 것일 뿐
마음은 아직도 우리는 전쟁때와 같은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 시대 보다 더 풍족하니
무조건 행복해라-
이것은 기성세대가 갖는 환상이며,
지금을 사는 청소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도
시대와 함께 업데이트되는 것이다."
-히가시노게이고 <가공범>
요즘의 청소년은 책임은 모르고 권리는 안다.
언제부턴가 내 아이는 더 귀하다고 한다.
남의 아이를 더 존중해 주고 내 아이를 더 엄하게 대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내 아이를 내 형편껏 키우지 않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특별한 아이임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한 부모의 사랑일 거라고 믿고 키워낸 아이들이 지금의 청소년이다.
모두가 특별한 아이라는데 특별히 의미가 있나 라며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 대해 아주아주 비판적인
올드한 기성세대가 돼버린 내가
학교에서 중학생들(사춘기 아이들)을 만나면 상상이상의 버릇없음에 놀란다.
지식을 가르칠게 아니라 인성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불변의 진리는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줘야 한다.
사랑받고 자란 마음이 따뜻한 어른이
다시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낼 수 있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책임감을 가지고 지낼 수 있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아는 어른으로 자라나도록!!
아무튼,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을 만나고 나면
나도 그때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 어떤 모습이었나?
나를 보던 그 선생님은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계셨을까.. 하는.
어르신들의 수업에서 나의 미래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난 가끔 어린 학생과의 수업에서 어린 나를 만나곤 한다.
잔뜩 긴장한 채 학교에 다니던 내가 그때 그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지금의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길 바란다.
훗날 어린 자신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