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이 의대에 가는 현실은 올바른가?
지난 6월 중순 이후로 숨 가쁘게 이어진 '킬러문항' 사태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듯 하지만 곧 수능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논란은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수능에서 '공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는 교육부의 원칙에서 과연 어디까지가 공교육과정에서 다루는 범위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서 교육부는 소위 '킬러문항'에 대한 예시를 위해 지난 수능과 모의평가들을 중심으로 26문항에 대한 사례를 따로 발표했다.
지난 5년간의 출제경향을 필자가 전문가의 입장에서 수학과목만 좀 들여다보았다. 과도한 불수능으로 회자되는 2017년을 정점으로 수학과목은 정답률이 3% 미만에 그치는 고난도의 문항은 출제에서 배제되고 정답률이 10% 정도 되는 난이도의 문제를 출제하고 있으며 기대치에서 표준편차를 반영하면 통계적으로 정답률이 7.5%까지 하락할 수 있다. 이는 통계에서 유의미하게 생각하는 값으로서 모집단이 조금씩 변하는 입장에서 완벽한 정답률 통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 평가원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수치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간 학부모와 수험생은 이러한 안정화된 기조 위에서 수능을 준비해 왔는데 갑자기 정부발표는 이런 기조를 흔들고 나왔기 때문에 6월 모의평가를 접한 다수의 수험생은 평소와 다름없던 시험이 왜 공교육을 벗어난 모의평가가 되었는지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전국의 과학고, 영재고와 같은 특목고 학생들은 매년 2500명 정도가 선발되고 있고 전국단위 자사고의 학생들도 매년 2600명 수준으로 선발되고 있다. 여기에 전국의 광역단위 자사고 학생들의 숫자도 이들 학교의 수가 28교이고 입학생을 대략 학교당 250명으로 계산하면 8000명이다. 즉 우리가 상위권이라고 부르는 학생수는 대략 13000명이고 n 수를 결심하는 학생이 대략 이 정도 숫자라고 어림잡아 계산하면 전체 40만 명의 응시생들 중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학생의 수는 적어도 26000명 정도이다. 이는 전체의 6.5%로 계산된다. 그러므로 정답률 10%의 문제가 출제될 경우 이들 학생에 대한 변별력은 없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일반고와 이러한 학교들 간의 학력차이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 시험이 쉽게 출제되면서 일반고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사교육의 효과를 어느 정도 경감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다시피 상위권 학생들이 만약 정시로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경우 서울과 수도권 대학의 의약학 계열과 법학이나 경영처럼 선호도가 높은 학과들은 학생선발에서 매우 큰 어려움에 당면할 가능성이 크고 동점자들의 내신이나 선택과목의 표준점수에 따른 희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대학들은 변별력이 떨어지는 수능 100% 입학전형을 전면수정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동점자 처리는 자칫 분쟁이나 소송에 휘말려 대학관계자들도 매우 기피하고자 하는 문제이며 그러하기에 그간의 수능 출제경향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교육부의 사교육경담대책에서 보이는 것처럼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하되 지나치게 어려운 문항을 배제할 경우 일반고학생들이 수능을 통해 상위권 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늘어나게 되는 효과를 가져와 자사고나 특목고 진학에 대한 수요도 어느 정도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보건 및 의 약학 계열의 특징은 졸업과 동시에 자격증이 주어지는 구조이고 이는 처음에 대학을 선택하는 입시가 가장 중요한 직업선택의 기회로 기능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즉 다른 전공, 예를 들면 경제학과 같은 전공의 경우는 졸업과 동시에 직업이 결정되는 구조는 아니다. 대학에서 충분히 경제와 관련된 여러 직업에 대한 탐색을 거쳐 졸업할 때 자신의 적성과 성취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지만 의약학 및 간호학과는 입시에서 직업이 결정되는 기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그간 이러한 구조에 대한 논란이 늘 있어왔다. 즉 중고등학교 시절의 6년의 노력으로서 향후 40년 혹은 50년의 삶을 결정짓는 이러한 입시구조를 놓고 보면 사실상 자신의 적성이나 취미, 가치관보다는 평생 한 번도 직업을 바꾸지 않고 상위 계층에 편입될 수 있는 입시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 의대입시에 유리할 모든 방편, 사교육에 기대어 선행학습을 시키고 특목고나 자사고 같은 학교에 들어가 내신을 따는 일들을 발 벗고 하는 일들은 오히려 필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런 입시구조에서 수학이 중요한 과목으로 활용되다 보니 수학을 가장 잘하는 이과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수학과가 아닌 의대를 선택하는 웃픈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IMF이전에는 이과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의학계열로 몰리지는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유연한 노동시장과 다국적 자본의 진출- 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 타인에게 고용되어 보수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자동화와 기계화가 진행되는 틈 바구니에서 사회의 많은 부분들은 변화되었지만 의료시장에서 의사나 약사가 배출되는 과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의사수의 공급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며 가장 직접적으로 환자를 맞이하는 서비스 직종인 의사가 생명존중의 가치를 가지면서 양심에 따라 환자를 진료함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뜨거운 가슴과 질병의 원인을 날카롭게 파고들 의학적 실력일 것인데 이러한 능력이 왜 고교 시절 공부를 잘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믿는지는 잘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학생과의 1:1 심층 질의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자질등을 각 의대에서 충분히 가려내어 학생들을 선발하는 게 오히려 더 훌륭한 임상의가 될 학생들을 뽑는 방법이라는 데 내가 만나본 많은 의사들은 동의하였다.
과학이나 수학 성적이 월등히 좋은 학생은 이공계로 진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진로지도이지만 현실은 의대나 약대로 진학시키는 데 유리한 역할만 할 뿐이고 문제 푸는 기술에만 치중한 나머지 수학이라는 학문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전혀 없는 학생들이 넘쳐나다 보니 수학과는 오히려 대학에서 경쟁력이 없는 학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그러니 교육부는 수학을 의대생이나 법대생을 뽑는 데 들러리를 세우는 역할에서 첨단과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진정한 실력을 평가하는 역할로 전환시키기 위해 의대전형의 핵심적인 내용을 바꾸는 데 오히려 노력을 기울여야 교육부가 바라는 기울어진 사교육 시장의 모순을 잡을 수 있는 핀셋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