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살리기를 위한 제언. 대학이란 울타리를 벗어나기!
지난 6월 18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기초과학 학회협의체의 교육 포럼이 있었다. 이 포럼이 크게 홍보가 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참석자들은 협의체에 소속된 위원회 위원들과 기자, 국회의원, 각 단체 회장들 외에 학생, 연구원, 그리고 일반인들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특히 대한수학회 및 한국 물리학회는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이 날이 물론 각 대학에서는 기말고사를 한창 치르고 있는 시점이라 여러 교수들은 본인 스케줄이 허락하지 않아 참석하지 못한 인원들도 많았겠지만 이 교육포럼의 주제가 "기초과학 교육의 위기와 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지 못한 점은 매우 유감이었다.
연구비 삭감, 2028 수능 개편, 의대정원확대는 2024년 올해 기초과학계의 저변을 흔드는 위기의 원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기초과학계는 머리띠를 두르고 국회를 찾아가 항의하는 쇼조차도 연출하지 못하는 무능한 샌님들의 집단으로 느껴진다. 사실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없으니 스스로의 손발이 잘린다고 해도 크게 억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학문 생태계를 복원하기는커녕 황폐화를 가속화시키는 여러 위기상황들을 놓고 기초과학 단체들의 협의체를 통한 느슨한 연대는 보는 이의 실망감만 더 키우는 꼴이다. 지금이라도 각 기초과학 단체들은 언론과 정부를 향해 위기상황을 알리고 유명 유튜버들을 홍보대사로 임명하여 현실의 위기를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금융, 바이오, IT 같은 소위 돈이 되는 전공으로 인재들이 몰려가면서 기초과학은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 혹은 이민자들의 가정에서 자라난 똑똑한 친구들이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주립대들의 수학과 교수들을 조사해 보면 유색인종비율이 50% 이상인 학교들이 대부분이며 그중에서도 중국인의 비중은 50%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다. 또한 구 소련이 무너지는 영향으로 인해 동구권의 여러 나라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라트비아)과 주변 국가들인 헝가리, 루마니아, 폴란드 출신의 수학자들이 미국으로 귀화하면서 미국 수학계는 거의 자국민의 비중이 매우 낮아졌다. 또한 지난번 필즈메달을 받은 프랑스 국적의 베트남 태생의 응오바우쩌우 교수, 영국 국적이지만 이란의 이미자 가정 출신인 비르카르 교수들을 보면 유럽에서도 자국 출신의 수학자가 두각을 나타내는 경향이 약해졌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면 인재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일자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의사들의 월수입이 20년 전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지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를 지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약대나 의대, 혹은 졸업 후 로스쿨, 의학대학원에 고등학교 최상위권의 인재들이 진학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기초과학계도 가장 양적으로 팽창한 단계에서 서서히 양적 규모가 줄어들 것이므로 질적 전환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시스템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초과학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대학에 소속되어 있고 대학이 점점 규모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거나 자격미달의 학생들을 받아 학과의 전망이 밝지 못한 경우 대학과 지역사회는 이러한 전공들을 폐지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경기이남의 여러 종합대학들에서 화학, 물리, 수학, 생물이란 전통적 학과명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까? 단지 최상위권 대학 서울대와 카이스트만 남기고 모든 여타대학의 기초과학 학과들은 사라져야 하는가? 위에서 언급한 기초과학 협의체에서 발언한 연사들은 과학자들의 처우개선과 수능제도 폐지, 고교교육에서 물리, 화학, 생명과학, 수학의 학습영역 확대 및 필수화를 주장한다. 이는 정부의 정책적 방향에 대한 비판이지만 외부의 도움만을 바라는 측면에서 매우 수동적이며 단기간 정부의 운영방안을 바꿀 수 있는 정치력이 없는 상황에서 실현가능성이 낮은 구호에만 그칠 가능성이 높다. 탁견을 기대하고 참석했지만 폐쇄적 학문 사회에 대한 쓴소리를 하는 참석자의 발언과 지구과학은 절대 쉬운 과목이 아니라는 지구과학학회장의 볼멘소리만 들려와 답답함이 밀려왔다. 연구자들의 개별적 외침만으로 주가나 환율,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들에게 기초과학의 위기란 주제가 와닿기나 할지...
지난겨울 세 개 대학의 교수들이 모여 학부와 대학원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줄 수 있는 Bridge 과목들을
단기 코스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학부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열었는데 L교수의 회의적 전망과 달리 순수수학영역임에도 불구하고 40명 이상의 학생들이 신청하여 4박 5일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내년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참여교수들은 뜻을 모았다. 시공간적 제약을 가해 만약 학기 중 하나의 대학에서 이러한 과목들을 오픈했다면 수강생은 몇 명이었을까? 아무리 S대학이었더라도 아마도 4-5명을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학과 내에서도 소위 인기전공에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고 취업이 잘된다고 알려진 분야로 학생들이 앞다투어 지도교수를 찾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순수수학 내에서 추상적 대수와 위상, 그리고 해석학을 고루 잘해야 하는 이러한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많아야 그 정도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연구자로서 발돋움하는 숫자는 그 보다 적으니 한 명정도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하나의 대학에서 이러한 전공을 오픈하기보다는 보다 열린 platform에서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참여하여 강의를 하고 수강생들 또한 소속대학에 상관없이 이러한 수업들을 각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비록 자신의 소속대학에서 전공지도교수를 정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정한 전공의 선배연구자들에게서 직접 교육을 받기에 학문후속세대를 키우는 데 있어 이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기서 가장 행정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강의를 하는 교수들의 시수인정- 즉 교육적 공헌에 대한 소속기관의 인정-과 여러 기관에서 참여한 학생들이 각자의 대학에서 수강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각 대학들의 협조가 필요한 점이다. 또한 대학원에 진학하는 개별학생들이 정부기관으로부터 Scholarship을 받아 그것을 자신이 진학하는 대학으로 Carry-out 하여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용으로 쓸 수 있다면 이러한 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보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대학원 운영이 어려운 여러 대학의 교수들 중 대학원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어 하는 교수들이 가칭 Center for Math research and education에 소속되어 대수-해석- 위상-기하-조합의 5가지 분야에서 매 학기 또는 1년 단위로 집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훈련시키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또한 이들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또 문제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통해 연구자로서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위에서 언급한 해결방안은 랩위주로 분산되어 있는 시스템을 극복 하고자 하는 모든 기초과학 단위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모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존의 IBS프로그램들은 기초과학을 선택한 우수한 신진연구자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들이 IBS 연구경력을 거치고 난 이후 자신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대학들의 기초과학 학과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형편에서 이제는 이러한 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때이고 각 기초과학 분야의 교육이 붕괴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 같은 BK-21은 각 대학의 특정학과와 대학원만 살지 울 뿐 기초과학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막지 못하고 있다. 처우개선을 바라는 이들보다는 기초학문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는 이들이 계속해서 그들이 가진 연구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고 이는 비단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만 누리는 혜택이야햐 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