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스펙과 지나친 노력
잘 알고 지내던 교수님의 제자 한 분이 몇 년 전에 J 지역의 대학에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에 귀국하고서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친구이고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기도 한 처지라 축하인사를 건네었지만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대인 모교에서 학위를 받기도 했고 실적이 우수한 것도 아닌 것 같아 몇 번 임용의 고배를 마시는 것을 보고 다른 길을 알아보겠지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J지역에 그것도 사립이 아닌 국립대에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무언가 짚이는 게 있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내가 근무하는 지역대학을 졸업하고 인근 대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한 졸업생 중 한 명이 또 조금 떨어진 중소도시가 위치한 국립대학에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드디어 명확해진 한 가지 경향을 확신하게 되었다.
광역시에 위치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지역대학인 우리 대학에서도 최근에 뽑은 교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국내대학을 졸업한 분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부의 출신대학들도 소위 말하는 SKY가 아닌 경우가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체감적 통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들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수도권 집중화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대학들의 어려움이 여러 통로를 통해 교수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서 우수한 실력을 갖춘 인재일수록 지역대학을 기피하고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에 도전하기 때문에 지역대학에 지원하는 자원들은 실력은 비슷하지만 소위 말하는 '스펙'이 조금 모자란 자체적 핸디캡을 의식한 지원이 많음을 주목해 볼 수 있겠다. 필자가 1년 동안 방문교수로 있는 고등과학원은 수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안정적으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지낼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인데 이곳의 젊은 수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역대학에서 일자리 공고가 난다고 해도 요즘 분위기로 봐서는 선뜻 지원을 하고자 하지 않고 좀 더 기다려서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지원하려고 마음먹은 경우를 자주 경험하였다. 또한 실적압박이 심한 수도권 대학에 임용한 자원들도 다시 그러한 실적압박을 이겨낼 만큼 연구력이 있는 경우 오히려 연구 중심 대학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사실 학생들이 바라보는 대학과 직장인으로서 바라보는 대학은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름 꽤나 들어봤을 만한 서울시내 대학에 근무하면서 좁은 연구실과 실험실, 실적압박에 더해 높은 주거비와 물가, 출퇴근의 어려움을 겪는 교수들에 비해 거점 국립대학에 근무하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교수들의 삶을 비교해 보면 가족들에게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좋을지 모르지만 교수 본인입장에서는 지역대학에서의 근무요건이 훨씬 나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 나고 자라 외국 유학을 다녀오거나 서울대학이나 KAIST같은 곳에서 학위를 한 젊은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대학입시에서부터 드러나는 수도권대학과 지역대학의 격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미래의 배우자 또는 현재의 배우자가 수도권을 선호하는 현상까지 더해 수도권을 벗어나는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말해주는 것은 수학자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준 만큼 오히려 경쟁력이 있는 자원들은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뛰어난 업적을 자랑하는 수도권 대학의 지원자들과 지역대학이나 중소도시지역의 생활여건을 고려할 여유가 없는 절박한 지원자들 사이에 이분화가 일어나고 있음이다. 지역대학에서 수도권대학으로의 이직현상도 최근 4-5년 사이에 부쩍 늘어나다 보니 지역대학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직을 할 상위권 자원은 기피하고 지역에 남아 지역대학에 만족하여 살아갈 교수자원을 뽑고 싶어 하여 기준만 충족된다면 오히려 지역적 연고가 있거나 타 지역으로의 이직을 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는 하위권 자원을 선발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의 좋고 나쁨은 필자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지역과 수도권의 격차가 더욱 가중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해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집단, 어느 영역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른 계층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 국가 내에서 인적, 지적 교류가 지역에 국한될 경우 앞으로는 수도권과 지역 간에 문화적, 학문적 차이가 두드러져 균형발전이라는 현 정부의 국정기조도 실행기반이 없는 구호에 그칠 것이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우려한 프랑스나 일본의 경우 교수자원은 처음 교수직을 시작하는 대학과 교수로서 계약을 갱신할 필요가 없는 종신직( tenure)을 획득하는 대학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으며 학문의 다양성을 지키고자 학위과정에서 특정한 전공에 몰리지 않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노력도 아울러 기울이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이분화된 분리현상을 극복하려면 이러한 균형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전문가 집단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론과 토의를 통해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