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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우 Feb 07. 2024

왜 내 프라이드 타월을 숨겼어?

9박 10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쓰레기장이 되어있을 거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깔끔한 거실이 보였다. 내가 놀라는 눈치였던 걸 발견하고 언니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제 친구를 데려왔어. 그래서 집을 청소했어." 친구를 데려온다고 미리 말하지 않은 탓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나도 집에 어차피 없었고. 오히려 집 청소를 하니까 좋네. 친구를 정기적으로 데려오도록 해"라고 농담을 건넸다. 


내 방으로 들어갔다. 전신 거울 앞에 걸려있는 프라이드 타월이 사라졌다. 어디 갔지?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전신거울 뒤에 고이 접혀있었다. 화가 난 나는 언니에게 소리쳤다. "내 타월 왜 접어놓았어?" 우물쭈물. 대답을 얼버무린다. 내 방까지 청소를 했다는 대답이다. "내 방 청소해 줘서 고마운데, 타월은 원래 걸려있던 건데. 왜 접어놓았냐고" 아까 전과 똑같이 우물쭈물. 나는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내 방에 있는 물건들 함부로 만지지 마"라고 말하고 대화를 끝냈다.


장기간 집을 비우고, 언니와도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오자마자 화를 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워크숍을 통해 내가 보다 성장하고 유연하고 차분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누그러진 마음으로 다시 언니에게 갔다. "내 방을 구경시켜 줄 생각이었어? 나도 언니 친구에게 내가 퀴어라는 걸 드러내고 싶진 않아.", "구경시켜 줄 생각은 아니었어.", "그러면 친구가 혹시 방을 몰래 볼까 봐 걱정됐어?", "응. 그리고 방 크기를 궁금해할까 봐 살짝 보여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들었어", "몰래 볼까 봐 걱정을 하든, 살짝 보여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든. 나에게 물어보는 게 먼저인 거 알지? 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으면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줘야 하는 거고.", "알았어 미안해"


날이 선 말투, 힘을 준 목소리. 화를 두 번에 나눠서 낸 꼴이다. 마음이 착잡하다. 부드러운 말투로, 평화롭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난 여전히 성깔 있는, 성질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끝내고 며칠 뒤에 슬픔이 올라왔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퀴어라는 걸 오픈했더라도, 전 애인과의 기념일을 같이 축하받았더라도, 나에게 퀴어 혐오적인 말을 직접 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언제나 난 위축될 수 있다.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깨달을 때마다 외롭고 속상하다. 한국여성의 전화에서 '먼지차별'이라는 단어로 캠페인을 많이 했는데, 성소수자도 '먼지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소수자들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먼지차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로 나는 경계하고 위축되고 불안하고 걱정한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감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소소한 순간들에 대해 내 반응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 차이에 대해 다음에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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