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커밍아웃 후 불안함
"이 말을 듣고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묻기가 어려울 때
들뜬 마음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말을 뱉을 때가 종종 있다. 대화를 마치고 영혼이 몇 그램 빠져나간 것 같이 불안한 마음이 든다. 최근에 친구와 헤어지고서 '말조심을 하고 영혼을 지켜야지'하고 생각해 놓고서 또다시 실수를 한다. 그런데 이번 실수는 크게 다가왔다.
전일제 직장에 출근한 지 20일이 되는 날, 팀장은 10년 동안 머문 이곳을 떠났다. 그는 자원활동가들과 뒤풀이를 마련했다. 내겐 첫 회식이다. 나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술을 빨리 마신 듯하다. 비슷한 나이 때문에 마음이 놓였던 것일까. 이상형과 환승연애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재미있는 주제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자기 자신의 고통이 무언인지는 몰라도, 그게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이요 저는 그게 성숙한 것 같아요"
"외적인 이상형은요?"
"전 애인이요"
이런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됐거든요"라는 말을 뱉었다. 뜨악. 어렴풋하게 옆에 있는 활동가가 "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에요?"라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난다. "잘못 말했네요"라고 수습할 수도 있겠지만, 준비 안된 거짓말엔 능하지 못하다. "아 저는 전에 사귀었던 애인이 여자예요. 그래서 전 여자친구" 솔직한 말을 할 수밖에. 거짓말을 했더라면 후회가 남았을 것 같다. 주말 내내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지 못한 상황에, 그리고 나를 숨기는 선택을 한 나를 보며 속상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그들과 가까워지지 못할 거라고 선을 긋으며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을 하고서 또 대화가 이어지긴 했다. 머릿속으로는 "어떡하지 X 됐다. 회사 잘리는 거 아니야? 이 사람들이 직원들에게 말하면 어떡하지? 어떻게 상황을 수습하지?" 머리를 팽팽히 굴러간다. 회사 사람들에겐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서고, 어떤 말과 말 사이를 골랐다. "제가 여자친구를 사귄 사실은 직원 분들을 몰라서요. 비밀로 해주길 부탁해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한다. 그러나 말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불안한 상황을 만든 스스로를 원망한다. 솔직하게 나를 표현해도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직장 동료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청소년을 만나는 사회복지사가 동성연애를 했다? 동성연애를 하는 사회복지사가 청소년을 만난다? 교육적으로 매우 해롭고 문제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 동성연애가 무슨 바이러스도 아니고. 청소년을 만나며 연애 대상자를 찾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 전문지식과 기술을 통해 청소년의 권리 보장에 힘쓸 뿐인데, 난 벌써 경계대상이 될 것만 같다.
커밍아웃을 들은 그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기분일까? 그들이 걱정된다. 그리고 나도 걱정된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지만, 가벼운 술자리를 망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사이에 커밍아웃하고서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보는 건 "제발 괜찮다고 말해"라는 말로도 읽히지 않는가? 그게 걱정 돼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이들의 선한 마음에 기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