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스쿨, 고리타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매너(예의)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에 동의한다.
1. 정확히는 첫째, 성장 과정에서 매너를 배우며 성품이 형성되고(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둘째, 성장 이후 즉 형성의 시기가 지난 뒤에는 그 사람의 품성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 몸에 밴 매너라고 생각한다.
2. 시대가 변화하며 상식의, 예의의 최저점이 점차 하락하는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천박한 방식의 자본주의로의 변질에 뒤따르는 상식과 예의의 후퇴에서부터, 카페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는 큰 소리로 대화하지 않는다거나, 여러 명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통화를 중단한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이를 위해 옆으로 비켜서 모두 내릴 때까지 기다린 뒤 탑승한다거나 하는 기본적인 예의도 후퇴한 것 같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하지 않으니, 당연하지 않던 것들이 당연한 시대가 된 것 같다.
3. 위의 경우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것이 이 시대의 특징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남들이야 어찌하든 나는 나의 매너를 지키자 정도로 넘어간다. 하지만 한 가지, 가능하면 정정토록 하는, 타협하거나 이해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마침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
OOO이라는 배우께서 새 작품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누군가가 “000 작품”이라고 말한 것에 ’000배우‘라고 부르거나 ’000님‘ 또는 ’000씨‘라고 부르자고 했다.
일상에서 간혹 있는 일.
‘대리기사가 블라블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리기사 아니고 대리기사님, 대리기사님께서’,
‘경비가 블라블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경비 아니고 경비 아저씨 또는 경비 선생님 또는 경비 어르신께서’
등으로 정정할 것을 권한다. (지인 한정)
언어를 사용해 사고하는(생각하는) 우리.
아끼는 이가 저런 언어 습관으로 인하여 스스로 매너를, 나아가 품성을 해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4.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지만) 온라인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
Manners makyth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