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당연함.
단어의 뜻을 모를 수도 있다.
배운 것이 적을 수도 있고, 맞춤법을 틀릴 수도 있으며, 논리적 오류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별 것 아니다. 단지 다른 것에 집중하며 살아온 삶일 수 있으며, 그것 조금 모른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전혀 문제없다.
하지만, ‘모르는 게 당연하다’라고 전제한 뒤 알고 있는 이들, 나아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람들 모두를 잘못된 존재로 규정하는 태도는 분명히 문제다.
무지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무지로 인해 느낀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춰 기준을 설정하고, 모두를 그 기준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태도는, 그것이 본능적 반응일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사회 전체의 인식 수준을 낮추는 해악 행위일 수 있다. 무지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지만, ‘무지의 강요’까지 허용될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게 뭐 어때서~’ 정도의 자기 방어는 별 문제 아니다. 그럴 수 있다. 생각 이전에 즉각 튀어나오는 심리적 반작용만 놓고 보자면, 나도 그러할 것. 하지만 이를 넘어, 지식을 갖춘 이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지성을 조롱하는 태도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는 반지성주의적 태도일 수 있다.
‘모를 수도 있지’는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지만,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거나 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식의 인식은 현재와 미래의 앎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 지식과 지성을 혐오하는 정서는,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앎이 절대우위가 아니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을 열위의 상태로 격하하려는 태도는 부당하다. 비교우위 정도로 존중하는 태도가 적절할 것이다.
앎도, 모름도 당연하거나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