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어두운 부분.

by stay gold



1. 100층 빌딩 높이까지 종이컵 쌓기.

어느 과학자의 말처럼 한없는 높이까지 종이컵을 쌓아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도록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외부의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완벽히 제어하면 100층 빌딩 높이까지 종이컵을 쌓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쌓을 수 없다. 우리는 쌓을 수 없다.

무게 중심의 완벽한 종이컵을 만드는 것도, 오차 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쌓아 올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종이컵 쌓아 올리기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할 이도 없다. 따라서 ‘100층 빌딩 높이까지 종이컵을 쌓아 올릴 수 있다‘라는 문장은 참이 될 수도 있지만, 생명력이 없는 문장뿐인 문장, 말뿐인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위와 같은 문장뿐인 문장, 말뿐인 말을 듣고 말한다.



2. 사랑.

온전히 설 수 있는 이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교집합, 서로 존중하는 한편 따스함으로 품는 만남, 최선의 접점, 항상 아끼고 감사하는 마음 등등 사랑에 대한, ‘좋은’ 사랑에 대한 부연 설명은 무수히 많다.


반대로 구속, 자신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갈망, 강요, 질투, 시기, 소유욕, 강압 등등 사랑에서 제거되어야 할 부분에 대한 설명도 무수히 많다.


전자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온전한 모습이라면, 후자는 사랑의 어두운 부분처럼 느껴진다.



3. 사랑의 어두운 부분.

그런데, 사랑의 어두운 부분은 모두 제거하고 이상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 정말 가능한 일인가? 어쩌면 100층 빌딩 높이까지 종이컵 쌓기를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뿐인 말은 아닐까?


세상에 구속, 억압, 질투, 시기 등과 같은 어두운 부분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왜 그런 사랑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깊게 생각하고 깨달은 이는 또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어두운 부분이 없는 사랑이 사랑이던가?



4. 사랑.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두운 부분이 있으므로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각자 이상적인 사랑을 지향하는 노력은 존중받을 수 있지만, 그 노력 자체가 곧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의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이 개념을 정의할 것은 아니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중 어느 쪽이 주 동력이냐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사랑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동시에 작용하여 온전함이 되는 것. 이 순간 어느 쪽이 더 많이 작용하느냐의 차이이지, 한쪽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작동 가능한 종류의 것은 아니다.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고 투명하게 바라보며, 교감을 통해 작용과 반작용을 맞춰가는 것. 상대가 가진 사랑의 어두운 부분, 사랑의 바닥까지 바라볼 용기를 내는 것. 내 사랑의 어두운 부분, 사랑의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포기하고, 들여다보고, 소유하고, 더욱 깊어지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감내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사랑 아닌가.



5. 사랑의 목적.

종이컵을 쌓아 올리는 노력대신 종이컵은 저리 치워버리고 서로 마음껏 갈망하기. 사랑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흡수하기. 이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인 상대에게 온전히 닿기 위한 사랑 아닐까.



어두우므로 밝을 수 있고, 밝기 때문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가 없는 빛을 좇는 것은 훌륭한 실험일 수 있지만, 내내 그런 빛만 좇아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문장뿐인 문장은 그 자체로 멋있지만, 우리의 멋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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