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어르신.
1.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시동을 끄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 가방에 넣은 뒤 그제야 차에서 내리려는데, 그사이 옆에 주차한 차의 조수석 문이 열려있다. 내가 문을 열면 부딪힐 것 같다. 금세 닫힐 테니 조금 기다리자 싶어 핸드폰을 꺼내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어린아이의 투정 소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다독이는 소리가 들린다.
2. 무슨 일일까 호기심이 생겨 지켜봤다. 드문드문 들리는 소리로 짐작건대, 대여섯 살 즈음되는 아이가 조수석으로 내리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며 운전석으로 넘어가 자동차 경적을 울려보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는 중.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그런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어서 집에 가자 말씀 중이셨다. 한참 대치 상태가 지속되더니, 결국 손자의 투정에 손을 든 할아버지 할머니의 승낙이 이어졌고, 신난 아이는 부리나케 운전석으로 넘어갔다. 옆 차량 조수석의 문이 닫혔고, 나는 차에서 내릴 수 있게 됐다.
3. 귀여운 아이, 그런 손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에 웃음을 간직한 채로 차에서 내려 걸어가려는데 ‘빵! 빵!’하며 경적이 두 번 울렸다. 이게 뭐라고 그리도 울려보고 싶었을까, 너무 귀여워 아이가 앉은 운전석을 바라봤다. 차를 지나쳐 걸어가다 멈춘 나를 눈치채신 할머니께서는 아이를 향해 제법 큰 소리로 “거봐! 저 아저씨가 이놈~한다! 이제 그만하고 내리자~”라고 말씀하셨다.
4. 갑자기 쓰게 된 누명. 얼떨결에 ‘이놈~’하는 아저씨가 됐다. 하필이면 짙은 색 티셔츠와 후드 집업, 그 위에 검정 가죽 재킷, 심지어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던 나는 아이에게 무서운 아저씨로 보이기 딱 좋은 상태.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소리로 “아니야~ 아저씨는 괜찮아! 아저씨 차에서도 눌러볼래? 자동차마다 조금씩 다른 소리 난다~”라고 말해줬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조금 당황하신 눈치였지만, 아이의 놀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5. 아쉽지만 아이는 거기서 놀이를 멈췄다. 내 차에 타서 경적을 누르는 것까지는 내키지 않았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밝은 색 옷을 입을걸...
고작 자동차 경적 소리 내보는 것도 마냥 즐거운 아이의 놀이. 그 귀여운 놀이를 좀 더 지켜보지 못하게 만든 내 옷차림이 아쉬웠다.
어른이 그러면 문제, 어른이 그러면서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면 문제다. 하지만 대여섯 살 아이의 신나는 장난이라면, 한가한 오후의 지하 주차장에서 경적 소리 몇 번 듣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그런 귀여운 경적 소리 즈음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으니, 모쪼록 지금처럼 계속 궁금해하고, 뭐든 소리 내 보고, 꾸준히 신나길.
어른이 어른의 것을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아이가 아이의 것을 하는 것이 문제일까. 이 사회의 아저씨들 중 한 명으로서 귀여운 아이, 너의 놀이를 응원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와는 통성명도 못하고 헤어졌다.
여하튼, “이놈~” 하며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르신.